‘경륜황제’ 안락한 삶 버리고 사이클 복귀뒤 치명적 부상 “달릴수만 있다면” 無慾 터득 9년전 올림픽 노메달 회한 “이제 다시 도전할 용기 생겨”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서 우승한 조호성(가운데)이 2위 디르크 뮐러(왼쪽), 3위 그리샤 야노르슈케(이상 독일)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조호성은 “한국 선수로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 우승자 조호성 스토리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조호성(35·서울시청)은 올 3월 대만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경륜 황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 돌아온 지 3개월째. 정상이 아닌 몸으로 무리한 게 화근이었다. 처음엔 대회에 참가해 컨디션이나 점검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막상 자전거에 올라타니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투르 드 대만 5일째, 내리막길에서 그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의 기억은 거기까지만 남아 있다.
자전거는 가드레일을 받은 뒤 5m 정도 되는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목뼈 3∼5번 골절. 얼마 후 깨어났지만 ‘이제는 끝이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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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제대회 복귀 무대였던 8일 열린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 출발선에 선 그는 “오늘도 즐기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생전 처음 달려보는 서울 도심은 신선하다 못해 신기했다. 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옆으로 보이는 한강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즐거웠다. 신이 났다. 마음껏 페달을 밟았다. 결승선을 2km 앞두고 차를 타고 뒤따라오던 정태윤 감독이 ‘공격’ 신호를 보냈다. 페달에 온몸의 힘을 실었다. 앞서가던 독일 선수 2명을 단숨에 제치고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경륜 시절 수없이 했던 1등이었지만 기분이 달랐다. 서울 도심을 달리는 대회에서 맛본 첫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우승을 확정짓자마자 두 살배기 딸 채윤이를 품에 안고 입을 맞췄다. 옆에는 6년 전 결혼한 아내 황원경 씨(29)가 서 있었다. 참 고마운 아내다. 매년 2억 원 넘게 벌던 경륜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아내는 “당신의 꿈이 소중하다. 꿈 없이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격려해 줬다.
경륜 황제로 군림하고 있을 때도 올림픽 메달의 꿈은 한번도 그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9년 전 시드니 올림픽 포인트레이스(트랙에서 몇 바퀴를 돌 때마다 순위를 매겨 총점으로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주)에서 그는 단 1점이 모자라 4위를 했다. 아쉬움을 안고 살던 그에게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은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포인트레이스 금메달리스트인 후안 라네라스(스페인)의 나이는 39세였다. 눈이 번쩍 떠지며 한 줄기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런던 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에 그의 나이는 38세다.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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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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