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식물관’ 베일 벗는다
앞에는 회색빛의 웅장한 백록담 화구벽, 뒤로는 드넓은 바다, 주변에는 아고산대(亞高山帶)로 불리는 고산초지가 펼쳐져 있다. 다음 달 초 재개방을 앞두고 있는 돈내코 등산코스의 가장 높은 지점인 한라산 남벽분기점(해발 1600m) 주변 풍경이다.
땅바닥에 붙어 자라는 특산식물인 눈향나무, 시로미는 제주조릿대에 밀려 바위로 자생지를 옮겼다. 이들 사이로 산철쭉, 털진달래가 군락을 이뤘다. 봄에는 화려한 꽃의 향연이 열린다. 한국 특산종인 구상나무 숲도 장관이다.
재개방을 앞둔 코스는 서귀포시 공설묘지∼평지궤대피소∼남벽분기점에 이르는 돈내코 등산로 7.0km와 남벽분기점∼윗세오름대피소 구간인 남벽순환로 2.1km 등 총연장 9.1km.
아열대부터 고산식물 군락 정상 가는길 안열려 아쉬움
서귀포시 공설묘지에서 출발하는 돈내코 등산코스는 아열대부터 난대, 온대, 고산지대 식물을 차례로 볼 수 있다. 저지대 계곡은 구실잣밤나무 등 상록수가 자리 잡았고 본격적인 등산코스에는 서어나무, 졸참나무, 단풍나무, 굴거리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찼다. 해발 800m를 지나면서 두 팔로 안아도 닿지 않는 적송(赤松)이 ‘호위 무사’처럼 하늘로 뻗어 있다.
울창한 숲이 끝나는 해발 1400m 평지궤대피소 주변은 키 작은 나무들의 요람. 화살나무에 주황색 열매, 노린재나무에 청색 열매가 옹기종기 달려 있었다. 참빗살나무, 마가목, 윤노리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내고 겨울맞이에 들어갔다. 한라산이 ‘식물의 보고’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돈내코 등산 코스는 1973년 열렸지만 등산객이 드물었다. 그동안 한라산국립공원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 등산하기가 힘들어 남벽분기점 도착에만 5시간가량 걸린다. 제주도는 재개장을 위해 목재 데크, 안전보호책, 전망대, 화장실을 설치했다.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90%쯤 회복된 이 일대의 식생이 또다시 훼손되지 않도록 등산객의 등산로 이탈을 막을 방침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