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에 중학교를 다닌 기자는 솔직히 외국어고에 가고 싶었다. 꼭 가고 싶은 학교도 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너는 용 꼬리보다 뱀 머리가 어울린다”며 만류하셨다. 결국 ‘외고 안 간다고 상관있겠어?’ 하는 생각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외고는 ‘선택’이었다.
일반계고에서 보낸 3년도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 생활을 하면서 외고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곤 했다. 비교내신제가 살아 있던 때라 어문계열 학과에는 외고 출신이 넘쳤다. 기자가 졸업한 학과는 학번마다 80∼90%가 외고 졸업생이었다. 그들은 일종의 ‘카르텔’을 구축했다. 불현듯 소외감이 찾아올 때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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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영재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은 뒷전이고 명문대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게 일반적인 비난이지만 서울 A외고 1∼3학년의 시간표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3학년은 매주 자기 전공 언어 수업을 9시간, 영어 수업을 8시간씩 수강했다. 1, 2학년도 전공 언어가 5시간, 영어는 6시간(1학년) 8시간(2학년)씩이었다. 한 3학년 학생은 “솔직히 1학년 1학기만 지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 영역은 다들 만점”이라고 자신할 정도였다.
그런데 외고 출신이 아니기 때문일까. 외고가 언제부터인가 일반계고를 나온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소외감을 안기는 ‘성(城)’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고교 졸업식 날 교장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호적, 국적, 교적 모두 여러분이 선택하지 않았다. 살면서 호적과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여러분이 이 학교 졸업생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달라지지 않는다.” 요즘은 가끔 교장선생님이 ‘성 밖 출신’들에게 찾아올 소외감까지 염두에 두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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