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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의 리버스토크] ‘짝퉁’과 ‘미투상품’

입력 | 2009-10-27 07:00:00


80년대 후반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이었다. 84년 ‘터미네이터’로 SF액션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그는 1986년 ‘에이리언2’로 흥행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다. 이런 제임스 카메론이 극비리에 새 대작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작에 호되게 당한 경쟁 영화사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 할리우드에서는 카메론 감독의 차기작은 심해가 무대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해 괴생명체와 인간의 싸움이구나’라고 짐작한 경쟁사들은 손 느리기로 악명 높은 카메론 감독에 앞서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먼저 발표했다. 모두 바다 속에서 인간의 몸에 괴생명체가 바이러스처럼 기생하거나, 아니면 정체모를 심해 생물이 습격하는 내용이었다. 바로 89년 발표돼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레비아탄’과 ‘딥식스’다. 그런데 정작 카메론이 내놓은 것은 심해를 무대로 외계인과의 소통을 테마로 했던 ‘어비스’였다.

워낙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고 두 영화가 먼저 김을 빼는 바람에 ‘어비스’는 흥행에서 실패했다. 하지만 독창적인 기획이나 영화적 완성도 보다 모방에 급급했던 ‘레비아탄’과 ‘딥식스’ 역시 ‘그저그런 킬링타임용 스릴러’란 평가에 머물고 말았다.

우리가 시장에서 자주 접하는 마케팅 기법 중에 ‘미투(me too) 상품’이라는 게 있다. ‘나 역시, 나도 똑같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숙어 ‘미투(me too)'가 의미하듯 인기 상품이나 브랜드의 이미지, 특성을 그대로 따라하는 영업 전략이다.

‘미투 상품’은 ‘어비스’와 ‘레비아탄’ ‘딥식스’의 경우에서 보듯 영화, 음악, 방송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쉽게 만난다. 한때 R&B 노래가 히트를 하자 많은 가수들이 자기 음색이나 개성은 생각치 않고 무조건 노래 마디 마디를 꺾으며 가성으로 노래를 했다. 이어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가 히트하자 이번에 너도나도 ‘소몰이 창법’으로 노래했다. 그리고 요즘은 기계로 다듬은 보컬 효과로 도배를 한 일렉트로니카와 단순함과 중독성을 강조하는 ‘후크송’의 전성시대다.

어디 음악뿐인가.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자 콩가루 집안, 막나가는 아이들, 이중삼중의 복잡한 불륜이 단골 소재가 됐다. 심지어 ‘막장’으로 히트한 드라마에서 주인공만 여자에서 남자로 바꿔 버젓이 새 작품이라고 내놓기도 한다.

대중문화 콘텐츠가 대중의 취향이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꼭 죄악시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작품일수록 자기만의 독창성 보다는 인기 콘텐츠의 클리셰(진부하고 판에 밝힌 표현)만 고민없이 따라한다.

‘미투 상품’의 당사자들은 나름 시장 흐름을 반영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묻어가기’ 또는 ‘김빼기 전략’이고 남의 것을 모방한 ‘짝퉁’일 뿐이다. 그리고 더 짜증나는 것은 이런 ‘문화 짝퉁’ 사이에서 제대로 된 진품을 찾는데 들이는 노력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이다.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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