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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골프]필드의 밉상 ‘거북이’ 백태 설마 당신은 아니겠지요?

입력 | 2009-10-24 03:00:00


 필드에서 기피 대상 1호인 동물은? 정답은 거북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만만디 골퍼’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2006년 미국 LPGA투어 숍라이트클래식 도중 실제 거북이 필드에 나타나자 김주미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제공 JNA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가 봐요.”

주말골퍼끼리 동반자에게 위로하듯 이런 얘기를 건넬 때가 있다. 앞 팀의 진행이 너무 느려 오랜 시간 기다린 뒤 어이없게 공을 친 경우다.

늑장 플레이는 프로와 주말골퍼,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거운 라운드를 방해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골프장에서 가장 늦은 팀은 바로 앞 팀이고 가장 빠른 팀은 바로 뒤 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원활한 경기 진행은 골퍼들이 지켜야 될 중요한 덕목이다. 미국의 골프 매거진 11월호에 실린 미국 주말골퍼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64%가 ‘코스에서 가장 열받게 하는 일’로 느림보 플레이를 지목했다.

필드에 나가면 다양한 스타일의 ‘거북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회사원 A 씨는 최근 모처럼 휴가를 내고 주중에 라운드를 갔다가 기분만 잔뜩 상했다. 100타도 넘게 치는 초보자들이 평일이라 개방된 챔피언 티를 사용하는 바람에 A 씨는 거의 매홀 샷 한번 하려면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막판 2개홀은 일몰로 ‘라이트 게임’까지 했다.

자기 순서가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골퍼도 원성을 사기 쉽다. 동반자가 다 치고 나서야 장갑과 공을 꺼내는 만만디 골퍼도 꽤 된다. ‘저러다 지쳐서 18홀을 다 끝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살 만큼 빈 스윙을 5번 이상 반복하는 골퍼의 뒤통수에는 날카로운 시선이 꽂히기 마련이다.

공을 굴리고 다니는 ‘자치기’ 수준인데도 샷을 할 때마다 캐디에게 “채 좀 바꿔줘”를 외치거나 미스 샷을 날리고도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걷는 골퍼도 있다. 그린에 올라가면 이른바 ‘기도’를 하는 골퍼도 눈에 띈다. 어드레스에 들어가서는 10초 이상 미동도 하지 않다가 마침내 퍼트를 하지만 대개 공은 컵을 비켜가기 일쑤다.

6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는 앞 팀의 늑장 플레이에 격분한 73세의 한 노인이 총까지 꺼내들었다는 뉴스가 해외토픽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총까지는 아니어도 앞 팀이 ‘사정권’ 안에 있는데도 경고성 공을 날려 서로 고성이 오가는 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탱크’ 최경주(39)는 지난주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했을 때 “국내 후배들의 플레이가 너무 느리다. 일본이나 미국에 진출한다면 고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GA투어는 같은 조 중 첫 번째 샷을 하는 선수에게는 60초를, 두 번째와 세 번째 선수에게는 40초를 부여한다. 어길 경우 우선 경고를 주며 두 번째 위반하면 1벌타와 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도 비슷한 규정을 두고 있다. 앞 조와의 간격을 14분 이내로 유지해야 하기에 선수들이 종종 앞 팀을 따라잡기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브라질 교포 안젤라 박은 지난해 SBS오픈에서 이 규정을 어겨 2벌타를 받기도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역시 정해진 시간 안에 샷을 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경고와 벌타, 벌금, 실격 등을 부과한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