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최고 테크니션 아츠 등
40대에도 격투기 강자 군림
《중견배우 백윤식 씨가 전설적 싸움꾼 오판수 역으로 나오는 영화 ‘싸움의 기술’(2006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오판수는 사우나 안에서 멋모르고 설쳐대는 동네 건달에게 “너 나한테 한 번만 더 손대면 그땐 피똥 싼다”는 대사를 날린다.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젊은 혈기만 믿고 끝까지 폼 잡던 이 건달, 결국 낭패를 보고 만다. 영화 속 오판수처럼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노장 파이터들이 실제 격투기계에도 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체급 랭킹 5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있는가 하면 띠동갑(12세) 이상 나이 차가 나는 혈기왕성한 상대를 한 방에 때려눕히기도 한다.》
격투기계를 대표하는 노장 파이터로는 ‘캡틴 아메리카’로 불리는 랜디 커투어(46·미국)가 있다. 프로야구 삼성 선동렬 감독과 동갑이다. 격투기보다 몸싸움이 훨씬 덜한 구기종목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령이지만 실력만큼은 20대에게 밀리지 않는다. 1997년 종합격투기 UFC에 데뷔한 커투어는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5차례 지냈고 2006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UFC 최고 흥행카드다.
지난달 UFC 102대회에서 안토니우 호드리구 노게이라(33·브라질)에게 판정으로 져 최근 2연패했지만 여전히 헤비급 랭킹 5위권에 드는 강자다. 지난달 UFC가 2년 4개월간 6경기를 더 뛰는 조건으로 재계약한 것만 봐도 그의 가치를 알 수 있다. UFC 측은 커투어가 49세를 바라보는 2011년 말까지 뛰는 데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마크 콜먼(45·미국)도 40대를 대표하는 파이터다. 그의 별명은 ‘해머’. 망치로 내리치듯 주먹이 세다는 의미다. 콜먼은 7월 열린 UFC 100대회에서 13세 아래인 스테판 보너(32·미국)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꺾고 건재를 과시했다.
입식 타격 쪽에서는 K-1에서 뛰고 있는 피터 아츠(39·네덜란드)가 대표적 노장 파이터다. K-1에 데뷔한 1993년부터 17년간 정상권을 지키고 있는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미스터 K-1’으로 불릴 정도로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간판선수다. K-1 월드그랑프리 우승 3차례, 준우승을 2차례 차지했다. 아츠는 26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2009 월드그랑프리 16강 대회에서 20대 파이터 알리스타 오브레임(29·네덜란드)을 상대로 17년 연속 8강 진출에 도전한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K-1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세대교체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UFC의 척 리델(40·미국)과 댄 헨더슨(39·미국)도 빼놓을 수 없는 노장 파이터다. 은퇴설이 돌기도 했던 리델은 7월 명예의 전당 헌액 직후 “명예의 전당 입성이 곧 은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8각의 철창에 계속 오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헨더슨은 UFC 100대회에서 마이클 비스핑(30·영국)을 KO로 꺾고 3연승을 거두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입증했다.
종합격투기는 복싱이나 레슬링, 유도 같은 단일 격투기 종목에 비해 수준 높은 기술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노장 파이터들의 선전 이유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