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지난해 한미 쇠고기 협상 이후 발생한 ‘촛불시위’ 경험담을 담은 회고록 ‘박비향(撲鼻香)’을 냈다. 박비향은 당나라 고승 황벽 선사의 시 ‘뼈를 깎는 추위를 한번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었으리오(不是一番 寒徹骨 爭得梅花 撲鼻香)’에서 따온 것이다.
4일 출판 기념회를 앞둔 그를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수산물유통공사 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보여준 박비향에는 ‘광우병 공포’의 실상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의 심경, 쇠고기 협상 과정 등이 진솔하게 실려 있었다. 광우병 공포에 대한 그의 회고를 듣다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신종 플루 공포’가 떠올랐다. 광우병과 마찬가지로 신종 인플루엔자A(H1N1)도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잘못 다뤄지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도 신종 플루 공포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맹목적인 공포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근거 없는 공포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광우병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떤 문제든 답이 있기 마련인데 무조건 공포에만 매달리면 대안을 찾을 수 없다”며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냉정한 대응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광우병 사태 때는 전문가들이 소극적이어서 광우병의 실체가 정확히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당시 광우병 관련 학자들에게 기고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나서는 이를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몇몇 교수들로부터는 “대학 본부 차원에서 언론에 나서지 말라는 ‘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말까지 들었다. ‘광우병 공포’가 지나치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면 “테러를 당할 수 있다”며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는 “신종 플루 사망자가 나오고 있지만 꼭 신종 플루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닐 수도 있다”며 “전문가들이 상황을 정확히 진단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세련된 홍보 전략도 강조했다. 그는 “광우병 사태 당시 온라인 여론 대응 등 홍보 전략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광우병 사태는 신종 플루 대처를 위한 일종의 ‘오답 노트’일 수 있다. 위기관리 능력의 미흡함을 보완하면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신종 플루) 유행병’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은아 산업부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