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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환수]황영조와 박태환

입력 | 2009-07-31 02:58:00


나이 차는 조금 나지만 영조란 친구가 있다.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 그렇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그 황영조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하필 가장 안 좋은 때였다. 1996년 봄 동아국제마라톤이 열린 경주. 영조는 레이스 중 발바닥이 찢어져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 2시간 26분대의 저조한 기록으로 들어왔다. 그의 나이 26세. 마라톤 선수로선 전성기도 안 된 나이였다. 기자도 육상 담당이 된 지 꼭 일주일째였으니 앞뒤 재지 못할 때였다.

그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 거센 후폭풍이 불었다. 그해 동아마라톤은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겸한 대회. 법대로라면 영조는 탈락이었다. 육상연맹은 고심 끝에 그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다. 3명의 대표선수 중 유고가 생길 경우에 대비한 후보선수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영조를 끼워 넣기 하려는 편법. 안 될 말이었다. 그렇게 배웠다. 육상연맹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 동아일보가 있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영조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4년 전 바르셀로나의 폭염을 뚫고 몬주익의 언덕을 박차 오르며 손기정 선생의 56년 묵은 일장기 한을 풀어준 천재의 ‘요절’이었다. 한동안 모두가 말을 잃었다. 그렇게 영조는 우리 곁을 떠났다.

불행 중 다행인지 기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영조와 개인적으로는 친해져 서로 시시덕거리는 사이가 됐다. 영조는 2년여 뒤 기자가 결혼할 때 처음으로 사회를 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하객들은 신랑은 제쳐두고 사회자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들어 기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변진섭이 아주 노래 잘하는 가수란 것도 영조 때문에 알게 됐다. 노래방의 거친 기계 반주이긴 했지만 그의 생음악을 듣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영조와 어울리면서 머릿속에 완성된 그의 캐릭터는 유쾌하면서 어떨 때는 약간 가벼워 보이기까지 하는 촌놈이었다. 많은 팬들도 이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며칠 전 우연히 케이블 채널을 보다가 이런 그에게서 ‘배신’을 당했다. 택시 안에서 하는 토크쇼인데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찍은 프로그램이었다. 정확한 문구는 떠오르지 않지만 올해로 불혹인 영조는 대강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이 있다. 그런데 그 선물은 포장이 돼 있다. 고통이란 이름의 포장이다. 선물을 받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황영조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나는 그 고통의 껍질을 모두 벗겨냈다.”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역시 이래서 황영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참패를 거듭하고 있는 박태환은 ‘모든 고통의 껍질을 벗겨냈다’는 황영조 선배의 말에 주목해야 한다. 영조는 그 프로그램에서 “한때 나의 사생활과 관련해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은퇴 이후의 일이다. 나는 선수 시절 1%의 껍질도 남기지 않고 벗겨냈다”고 덧붙였다. 혹시 박태환은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재능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자 스포츠 스타 가운데 국민적 관심사인 종목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던 선수는 차범근 박찬호 황영조 박태환이라고 생각한다. 차범근에겐 허정무가, 황영조에겐 이봉주가, 박찬호에겐 김병현이 있었다. 박태환에겐 라이벌이나 뒤를 이을 후배가 없다. 박태환이 더욱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이유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