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메드베데프-푸틴체제 파열음… 공무원 눈치보기 극심
‘대통령 말을 따라야 할까, 실세 총리의 말을 들어야 할까.’
러시아에서 상왕(上王)으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그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권력을 나눈 양두(兩頭) 체제가 굳어지면서 공무원들의 ‘눈치 보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상왕과 대통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고위공무원으로는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이 꼽힌다. 푸틴 총리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2004년 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감세 방안을 미루고 있다고 일간 네자비시마야가제타가 20일 보도했다. 그가 대통령의 말을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푸틴 총리의 입김 때문이다. 푸틴 총리는 “감세 정책은 재정적자와 세수 결손을 가져온다”고 강조해왔다. 재무장관의 우유부단이 계속되자 대통령 행정실은 “앞으로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관료를 처벌하는 법안을 내놓겠다”고 경고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관료들이 상왕에게 기울어 대통령의 영(令)을 뭉개는 일은 쿠드린 장관뿐이 아니다. 장교 인력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는 개혁안을 내놓았던 장성들도 ‘푸틴 사단’으로 불리던 크렘린 구파와 마찰을 빚고 있다고 국방부 소식통들이 전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상호 협의에 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양두체제의 파열음은 지난해 9월 경제위기 이후 더 잦아지고 있다. 올 6월 말까지 모스크바 시내에서 오락기기를 철수하겠다는 개혁법안 시행도 이런 현상 중의 하나다. 국세청 고위인사들은 법안 시행을 미뤄온 총리의 뜻을 받들어 의회에 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관측됐다. 개혁안이 백지화할 지경에 몰리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달 초 국세청장을 크렘린으로 불러들여 법 시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집권 2년째를 맞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최근 고위관료들의 눈치 보기가 극심해지자 푸틴 총리가 이끄는 행정부를 잇달아 질책하고 나섰다. 최근 그는 “보고 단계를 대폭 줄이고 문서도 전자결재로 대체하라”고 지시했다. 또 부패 단속 등 일부 현안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습도 국영 TV에서 자주 방영되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