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퀴즈쇼에서 상금 6억 원을 탄 인도 청년의 순수한 로맨스와 인생역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사진 제공 무비앤아이
‘슬럼독 밀리어네어’ 미리보니…
지난달 25일 오전 영국 런던 웨스트 인디아 키 시네월드 극장 매표소에는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 2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트레인스포팅’으로 유명한 대니 보일 감독이 인도 배우를 출연시켜 찍은 이 영화는 미국 골든글로브 4개 부문, 영국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하며 미국과 유럽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미국에서는 2008년 11월 12일 10개 극장에서 개봉한 뒤 6주 만에 상영관 수를 589개로 늘렸다.
이 영화의 원작은 2005년 4월 출간돼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소설 ‘질문과 대답’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말처럼 ‘퀴즈는 지식을 견주는 게임이 아니라 기억력을 확인하는 것’. 여기에 말리크가 퀴즈쇼에서 기적처럼 우승하게 된 이유가 숨어 있다.
살다 보면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절대 잊을 수 없게 뇌리에 새겨지는 순간을 만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생애 첫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대니 보일 감독은 영화 촬영에 도움을 준 인도 뭄바이 시민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말리크는 거지, 여행지 호객꾼을 거쳐 웨이터가 되기까지 살아온 길에 답을 쌓은 질문들을 퀴즈쇼에서 차례로 만났다. 보일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끔찍하게 경이로운(bloody wonderful)’ 행운이 말리크에게 찾아온 것. ‘슬럼독…’의 미덕은 ‘누구나 인생에 한두 번은 엄청난 기회를 만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믿고 싶게 풀어낸 데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영화사 최초의 글로벌 마스터피스”라고 극찬했다.
소설의 기발한 설정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면서 시작한 ‘슬럼독…’은 원작과 달리 무게중심을 로맨스로 가져간다. 말리크는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사랑하는 여인 라티카가 TV에서 나를 봤으면 하는 소망으로 쇼에 출연했다”고 말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라티카를 기다리는 말리크의 모습은 가로등 아래서 기약 없는 연인을 기다리던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연상시킨다.
말리크의 얘기처럼 퀴즈쇼에서 우승하기 위해 ‘완벽한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보일 감독은 스타 배우 등 완벽을 위한 요소를 배제한 영화로 아카데미에 드라마 같은 역사를 선사했다.
런던=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남우주연 숀 펜 두번째 감격
여우주연 케이트 윈즐릿 ‘5전 6기’
故 히스 레저에 남우조연상
여우주연상은 ‘더 리더’에서 10대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36세 여인을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이 받았다. 윈즐릿은 1995년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뒤 도전 6번 만에 첫 수상의 감격을 맛봤다. ‘밀크’의 숀 펜은 실존 인권운동가를 연기해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를 누르고 ‘미스틱 리버’(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열연한 히스 레저는 남우조연상을 받아 1976년 피터 핀치 이후 사상 두 번째 사후(死後) 수상자가 됐다. 2008년 1월 약물 과용으로 숨진 그를 대신해 부모와 여동생이 시상대에 올랐다. 여우조연상은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 자유분방한 예술가로 출연한 페넬로페 크루스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