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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홍병식]10년후 核과학이 먹여 살린다

입력 | 2009-02-05 02:45:00


전북 부안군의 위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설치와 관련해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지 어느덧 5년이 훌쩍 흘렀다. 우리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는 듯한 이 사건은 당시 국민에게 원자력 발전과 핵폐기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국민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거의 절반을 공급하는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매일매일 쌓여가는 위험한 핵폐기물을 자기 고장에 저장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사실에 고민했을 것이다.

핵폐기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류의 핵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깊이 파고들어와 이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그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핵의 특성을 이용한 핵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은 환부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첨단 의료영상 장비로 많이 사용된다. 핵붕괴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는 암세포를 파괴하여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매우 요긴하다.

특히 최근에는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하여 주변의 정상세포를 건드리지 않고 인체 내에 깊숙이 위치한 암세포만 파괴하는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악성 종양치료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또 핵 가속기를 이용할 경우 1조 분의 1m 이하 크기의 미세 구조물 가공이 가능하므로 차세대 반도체 공정 및 광집적회로 제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화석연료 및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미래의 청정 에너지원 개발과 함께 핵폐기물의 처리방법을 찾아내는 일 또한 핵 과학 분야에서 담당해야 할 몫이다.

방사선 기술로 대표되는 핵 과학 시장의 특징은 선진국일수록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장규모가 커진다는 점과 원자력 발전 대비 비(非)발전 방사선 기술시장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최근에 수행된 정책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은 GDP 대비 전체 방사선 시장규모가 150%에 이른다. 일본도 100%에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겨우 3%에 불과하다. 또 미국은 원자력 발전 대비 비발전 분야의 방사선 기술시장 규모가 약 400%이고 일본이 150%인데 우리나라는 겨우 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할 경우 원자력 발전을 제외한 방사선 분야의 시장규모가 현재의 수십 배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함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는 1970년대에 섬유산업이, 1980, 90년대에 가전과 자동차, 철강이 주축을 이루었고 현재는 반도체와 정보통신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새로운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미국과 일본의 예에서 보았듯이 핵 과학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핵 이용 기술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여러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래전 부터 이 분야의 다양한 응용성에 주목하여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를 갖추고 연구를 장려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핵 이용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1989년에 란저우 핵과학연구소를 설립했고 중이온 가속기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도는 가변에너지 사이클로트론센터 및 바바 원자핵 연구센터를 통하여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노력이 미미했다. 현재 우리 경제규모는 GDP를 기준으로 세계 13위인데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앞서는 국가 중 핵과학 관련 가속기 및 기초연구소를 갖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정부가 구상 중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칭)에 아시아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고 중이온 가속기를 건설한다는 최근 발표는 미래를 위해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홍병식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