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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日자민당 파벌정치의 고민

입력 | 2009-02-03 02:58:00


일본에서는 자유민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다. 자민당은 1955년부터 반세기 이상, 대부분 여당이었다. 1993년에 정권을 잃었지만 비(非)자민 정권은 단명에 끝났다. 실질적으로 자민당이 주도권을 잡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정권 이후 다시 자민당 정치가 부활했다. 확실히 장기 집권이다.

하지만 자민당은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 수많은 소수당의 연합이다. 자민당은 파벌로 나뉘어 있다. 이탈리아의 기독민주당이나 인도의 국민회의파 등 의회민주주의에서 장기 집권한 우위 정당은 몇몇 있었지만 자민당의 파벌처럼 안정된 당내 당은 없었다.

자민당에 파벌이 유지돼온 이유는 선거제도에 있다. 중의원 의원의 중선거구제는 실질적으로 비례대표제와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다. 자민당 같은 우위 정당에는 오히려 불리하다. 하지만 자민당의 파벌 하나하나를 정당으로 보면 다르다. 정권을 빼앗기지 않게 보수정당 연합을 짠 것이 자민당이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부터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장기정권은, 실은 자민당이 아니라 다나카(田中)파의 정권이었다. 최대 파벌인 다나카파는 다나카 총리의 퇴진 이후엔 거의 총리를 배출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더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 이후 오부치 총리까지의 기간에도 구 다나카파, 즉 게이세이카이(經世會)의 영향력은 굳건했다.

이로 보면 일본에도 실은 정권교체가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속한 세이와카이(淸和會)는 다나카파·다케시타파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항상 소수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정권에서 게이세이카이의 영향력은 무너졌다. 세이와카이는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를 낳았다. 게이세이카이에서 세이와카이로 정권 교체가 실현된 것이다.

파벌과 정당의 다른 점이 있다면 제1정당은 정권을 차지하지만 최대 파벌은 항상 총리를 배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나카파 시기에 자파 출신 총리는 다나카 혼자였다. 다케시타파 시기에도 1993년까지 자파가 배출한 총리는 다케시타뿐이다.

하지만 최대 파벌이 총리를 내지 않은 채 정권을 통제하는 것은 지지하기 어렵다. 다나카 전 총리가 총리 복귀의 꿈을 버리지 않는 한 다나카파에서 총리가 나오기 어렵다고 판단한 소장파는 다나카파를 이탈해 다케시타파를 만들었다. 다케시타 정권도 단명했다. 1989∼1993년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두 정권 기간에는, 총리를 맡지 않고 영향력 행사를 도모한 다케시타 전 총리와 자파에서 총리를 내고자 한 가네마루 신(金丸信),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대립으로 결국 게이세이카이의 유력 의원이 자민당을 탈당해 비자민 정권이 수립됐다.

최대 파벌이 총리를 내지 않으면 내부 대립이 일어나 일본 정치가 격동하는 구도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이와카이는 정권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다. 세이와카이 내부에서 회원이 아닌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를 언제까지 지지할 것인가 대립이 생기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는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총선 이후 최대 파벌인 세이와카이가 난처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점이다. 의원 수가 늘어난다 해도 내부 대립은 격화하고 결집력은 약해질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가 단순한 장식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아소 총리도 장식일 뿐이다. 일본의 정당정치에서 세이와카이가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이런 장식을 걷어내는 것일 듯하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