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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살아있다]진화하는 진화론

입력 | 2009-01-02 03:00:00


21세기도 다윈의 시대… 생물학 넘어 정치-경제 전분야 영향

“지성계 거두 다윈-마르크스-프로이트중 다윈만이 건재”

진화의학-진화경제론-진화심리학… 최근 철학까지 확산

탄생 200년 맞아 비글호 행적탐사-전시 등 재조명 활발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2월 12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11월 24일)인 해다. 전 세계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관련 서적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동아일보 동아사이언스 동아닷컴이 178년 전 다윈이 비글호로 여행했던 길을 따라가는 장보고호의 항해를 신문과 방송 및 인터넷을 넘나드는 크로스미디어로 보도하는 것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다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탄생 200주년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경계를 넘어 전 분야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변이가 발생하고, 경쟁을 통해 한 개체가 적자생존을 한 뒤 생존한 개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단계를 분석한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대입하면 정치 경제 사회 이념 문화 등 모든 분야의 변화 양상을 설명할 수 있다. 다윈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는 현대의 세상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다윈의 눈으로 본 세상’을 정치 철학 경제 산업 스포츠 등 분야별로 조명한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사학자 마이클 셔머 씨는 저서 ‘왜 다윈이 중요한가’에서 “우리는 다윈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진화론은 오늘날 일반론적인 문화에 널리 퍼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지성계의 거두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중에서 유일하게 다윈만이 오늘까지 건재하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씨도 ‘다윈의 시대’라는 글에서 “진화론의 논리로 보면 왜 사람들이 경쟁하는지, 집단을 이루는지, 사랑에 빠지는지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평가처럼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의 ‘옛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철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 등 다른 학문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며 ‘진화’와 ‘분화’를 계속하고 있다.

○왜 진화론인가

한국과학사학회장을 지낸 김기윤 박사는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지는 사회 양상을 진화론적 서사(evolutionary epic)로 해석하는 게 유용하다는 생각이 학문 전 분야에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역사학 물리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 학자들과 매달 모임을 갖고 진화론으로부터 차용할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기존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논리적 한계에 부닥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서 진화론적 접근 방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예종영 가톨릭대 연구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이론적 위기를 맞은 국제정치학의 예를 들었다. ‘국제사회는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고 봤던 현실주의적 해석이 구소련의 붕괴로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예 교수는 “진화론적 시각으로 국제질서 주도권의 주기적 변화를 분석한 조지 모델스키 미국 워싱턴대 명예교수의 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가 진화론적 시각에서 내놓은 이론을 빌리면 앞으로 국제질서는 국가 간 연합(coalition)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화의학은 인체와 질병을 분리해 보면서 질병만 치료하려는 데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대해 특히 면역력이 강한 민족이 있다는 사실은 기존 의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진화의학은 인체가 어떻게 환경에 적응해 왔는지 따져서 질병의 원인을 찾는다.

○힘 실리는 진화론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블레이크 씨가 1996년 주장한 ‘기업진화론’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기업진화론―강자만 살아남는다’라는 기사에서 “경제 사이클은 다윈적(Darwinian)이므로 약한 기업은 탈락하고 생존 기업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실 있는 은행에 예금이 몰리고,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이 우수 인력을 차지하는 최근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진화경제론’도 힘을 얻고 있다. ‘경제 진화론’을 쓴 유동운 부경대 교수는 “경제 현상이 합리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고 보는 기존 주류 경제학으로 해석이 안 되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금리를 낮추면 기업들의 투자가 늘 것’이라고 보는 게 주류 경제학적 시각인데 최근에는 그런 ‘처방’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기존 경제학은 경제를 마치 ‘기계’처럼 보면서 상황이 나빠지면 부속품 하나 바꾸면 된다는 식으로 대처한다”면서 “반면에 경제진화론은 경제가 스스로 주변 환경에 적응해 체질을 바꾸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다는 쪽”이라고 설명했다.

철학 연구에도 진화론적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김시천 호서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다윈이 맹자와 만났을 때’라는 논문에서 “최근 서구 학계에선 맹자의 사상을 놓고 진화론적 해석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심리학에선 퇴조하고 있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자리를 진화심리학이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바람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좌파는 사회다윈주의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진화론, 대중 속으로

다윈의 진화론이 올해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일반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은 5월 10일까지 여는 ‘다윈전(展)’을 통해 ‘종의 기원’ 초판 복사본, 다윈이 여행했던 갈라파고스제도의 코끼리거북 박제 등 진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7월경 갈라파고스에 도착할 예정인 장보고호는 도중에 관찰한 내용들을 동아일보 과학동아 어린이과학동아 동아닷컴 및 동아사이언스의 홈페이지를 통해 알린다. 한국과학사학회와 서양사학회는 6월 진화론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한다.

영국의 런던 자연사 박물관, 호주 자연사박물관, 프랑스의 툴루즈 박물관 등은 다윈 특별전시회를 연다. 영국 슈롭셔 주 슈루즈베리에 있는 다윈의 생가가 2월 13일부터 일반에 공개되며, 캐나다의 밴쿠버에선 다윈을 주제로 한 연중 축제가 열린다.

3월 7일 이탈리아 로마에선 이탈리아의 그레고리안대와 미국의 노터데임대가 바티칸의 후원으로 진화론을 논의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22∼24일 다윈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연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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