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탤런트 안재환 씨와 최진실 씨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살 동기와 의혹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탤런트(연기인)가 직업인 두 사람이 ‘탤런트의 특별한 탤런트(재능)’의 어원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은 피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어 아쉽기만 하다.
웹스터 영어사전에 따르면 탤런트(Talent)는 본래 무게의 단위였으나, 성경의 ‘탤런트비유’에서 유래해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특별한 재능’ 혹은 ‘남다른 재주’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다고 성경에 기록된 그 우화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주인이 먼 여행길에 오르면서 거느리고 있는 세 명의 하인에게 각각 5탤런트, 2탤런트, 1탤런트의 재산을 맡겼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은 하인들을 다시 불러 결산을 하였는데 5탤런트와 2탤런트를 맡은 하인은 두 배씩 이익을 남겨 주인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은 반면, 1탤런트를 맡은 하인은 뒷마당에 고스란히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와 주인으로부터 ‘사악하고 게으른 하인’이라고 크게 야단맞고 쫓겨났다는 내용이다.
1탤런트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금화로 쳐서 1000개에 해당하는 무게를 나타냈다고 한다. 즉, 금화 한 개를 한 냥 정도로 치면 1탤런트는 지금의 시세로 족히 10억 원에 상당하는 큰 금액이다. 세 하인은 대략 50억 원, 20억 원, 10억 원에 해당하는 상당한 거액의 재산을 맡았던 셈이다.
재능은 사유물 아닌 맡겨진 것
많은 성경학자가 이를 두고 탤런트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가 갖고 있는 남다른 재능이 자신의 소유물이기보다는 ‘맡겨진(Entrusted) 것’이라는 해석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전통 혹은 신봉하는 종교, 개인적 신념에 따라 과연 누구로부터 맡겨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재능은 그 누군가에 의해 특별한 목적에 따라 잠시 맡겨진 것이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 ‘탤런트’에 담겨 있음을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우리들이 이러한 탤런트의 본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다면, 개인적 삶의 차원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나 병폐를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두 유명 탤런트의 극단적 선택,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밀어낸 근본 원인이 바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상업적으로 변질돼버린 ‘탤런트관(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안재환 씨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가 연기자로서의 남다른 재능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하고,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길만은 포기할 수 없는 ‘숙명적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길’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편 최진실 씨의 경우는 근거 없는 소문과 악성 댓글이 아무리 끈질기게 따라붙어도 실상은 이 모두가 자기에게 맡겨진 뛰어난 탤런트 때문이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치르게 되는 유명세 정도로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답고 발랄한 연기자 한 사람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두 탤런트가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아름답고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탤런트를 객관화해서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아끼고 존중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잠재능력 충분히 펼치는 사회로
어디 이 두 사람뿐이겠는가. ‘탤런트 비유’에 담긴 또 하나의 중요한 가르침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에게 나름대로 특별한 재능이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탤런트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육의 기본으로 자리 잡는다면 누구나 자신에게 잠재된 재능을 최대한 조기에 발견해 이를 잘 계발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것은 물론, 그 맡겨진 재능이 자연스럽게 창의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갖춘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 큰 것을 맡은 이들에게는 성원을 보내고, 반면에 적게 나누어 가진 이들에게는 따스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쯤 가능할지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백성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sgbaik@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