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막히자 고금리 저축은행으로
8월말 잔액 503조… 증가폭 다시 커져
자산가치 폭락땐 ‘부도사태’ 경계해야
국내 가계가 은행, 상호저축은행, 지역 농협이나 수협 등 예금을 다루는 금융기관에서 빌린 빚이 500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시중 은행의 대출은 주춤한 반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 등 비(非)은행 금융기관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 가계의 금융자산이 금융부채보다 많아 가계대출 부실 위험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지만 대출의 질과 소득에 따라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예금취급 기관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7월보다 4조2776억 원(0.9%) 늘어난 503조999억 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잔액은 6월에 5조3000억 원이 늘었지만 7월 3조9000억 원 선으로 떨어졌다가 8월에 다시 증가폭이 확대된 것.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의 증가세는 둔화되는 반면 상호저축은행, 지역 농협과 수협,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이 늘어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금은행의 가계 대출은 전달보다 2조1775억 원(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7월 증가폭(2조3902억 원)보다 줄어든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7월 2조4130억 원에서 8월 1조 원 선으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비은행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증가폭은 7월 1조4748억 원에서 8월에는 2조1000억 원으로 늘었다. 비은행 금융기관 가계 대출의 93%는 지역 단위농협의 대출액이다.
이상용 한은 금융통계팀 과장은 “시중 은행들이 위험 관리를 강화하면서 가계대출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있는 데다 부동산 대출 규제로 비은행 금융권으로 대출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 당국은 당장은 가계부채가 금융기관 건전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의 저축 등 총 금융자산 규모가 6월 말 현재 총 금융부채의 2.22배로 빚을 갚고도 남는다는 것.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7월 말 기준 0.6%에 불과하다.
문제는 가계대출의 질과 증가 속도다. 2007년 말 개인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48%로 2000년(93.9%)보다 1.6배 정도 높아졌다. 가계대출은 시중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상호저축은행, 보험, 증권사 등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계대출에서 제2금융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37.1%에서 올해 6월 말 39.5%로 상승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부채 상환 능력의 약화도 문제다.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은 2002년 12.8%에서 2007년 20%로 증가했다. 현재와 같이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가계대출의 부실이 커질 수도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년간 금융기관 가계대출 가중 평균금리 추가 상승분을 감안할 때 올해 국내 가계는 1년 전보다 6조2000억 원의 이자를 더 부담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가구를 보면 부채 상환에 큰 문제가 없지만 소득계층에 따라 채무 상환 능력은 다르다.
유경원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대비 부채 비율과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을 동시에 본다면 80%의 가구가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3% 정도는 소득대비 부채 비율, 자산대비 부채 비율이 모두 3배 이상인 위험가구로 나타났다.
유 위원은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에 대한 평가가 총량 지표에 의존해 면밀한 평가가 빠져 있다”며 “미국처럼 가계의 자산, 부채 및 소득 상황에 대한 세밀한 통계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