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테이블’에 다시 앉더라도
‘핵폐기’ 더 힘든 힘겨루기 예고
신고한 핵시설부터 검증… 추가검증 절차 밟을듯
일각선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밀렸다” 비판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방침과 함께 북한 핵시설 검증 방법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7월 이후 중단됐던 북핵 6자회담 프로세스가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0일 내외신 정례 브리핑에서 “북-미 간 협의 내용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제사찰 개념과는 다르다”며 “영변지역 외에도 열 몇 개의 핵시설이 있으며, 이런 시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 경우 미국과 북한의 합의가 있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6월 신고된 영변 핵시설을 먼저 검증하고 북한과의 합의를 거쳐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미신고 시설을 검증한다는 ‘순차적 검증안’을 시사한 것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북핵 문제에 진전을 보려는 미국 측의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밀렸다는 비판도 예상된다.
▽미국의 양보=미국은 당초 검증 이행계획서에 북한이 신고한 시설은 물론 UEP, 핵협력 의혹, 미신고 시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태도였다.
북한은 이를 ‘강도적 사찰’이라며 반발했고 핵 불능화 작업 중단 및 핵시설 복구로 맞서 한반도 위기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뒤 타협점을 찾은 것.
이는 미국의 ‘대폭 양보’로 풀이된다. 미국의 ‘선택’은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11월 4일), 부시 행정부의 본격적인 레임덕 국면, 6자회담 진전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증은 산 넘어 산=유 장관이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과 관련해 “북한과의 합의를 거쳐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UEP 의심 시설은 물론 과거 플루토늄 추출 내용 검증에 필수적인 고준위폐기물 저장소 등 신고서에 담기지 않은 시설에 대한 검증이 북한의 동의 없이는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장차 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추가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북핵 6자회담이 열리면 비핵화 2단계 조치 완료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지만 궁극적인 핵폐기 단계까지 가려면 난관이 많다는 뜻이다.
일본과 한국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의 동의 여부도 변수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국 국내법 문제여서 한국과 일본도 미국 측 해법을 정면으로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의 효력=북한 군부 강경파가 장차 핵시설 검증 프로세스에 반대하고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해제가 가져올 경제적 이득을 고려할 때 북한 측도 당분간 협상 쪽에 무게를 둘 공산이 크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크게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대적성국교역법 적용 중단 등 두 가지다.
북한으로서는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되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금융기구에서 차관을 얻을 길이 열리게 된다.
또 대적성국교역법 규제가 해제되면 미국 내에 동결돼 있는 북한 자산이 해제되고 북한의 국제 금융거래가 상당 부분 풀리게 된다. 미국 금융기관의 대북 긴급금융 지원도 가능해진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