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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MB노믹스 ‘747’ 항로 이탈… 속수무책

입력 | 2008-07-23 03:12:00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내놓은 이른바 ‘MB노믹스’의 핵심정책들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굴절되거나 심지어 기본 골격마저 해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 ‘747’(연 7% 경제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비전을 사실상 포기한 데 이어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개혁 프로그램도 상당 부분 퇴색하고 있다. 특히 ‘MB노믹스’의 대폭 후퇴는 경제 환경에 맞춰 탄력적으로 수정·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현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기조를 뿌리째 흔들 우려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포기 대운하 - 7%성장 비전 집착하다 손놔

퇴색 공기업 민영화 - 정부개편 초심 흔들

좌초 일자리 창출 → 경제회생 선순환 막혀

“안팎 변수 많지만 의지부족이 더 문제” 지적

○ MB노믹스 ‘없던 일’ 되나

정부는 조각(組閣) 파동과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별다른 설명 없이 MB노믹스 핵심 정책들의 철회 또는 연기를 발표하고 있다.

정권 출범 전부터 논란이 됐던 한반도 대운하의 경우 물류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올릴 수 있는 핵심 정책으로 제시됐으나 비판여론이 확산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사실상 포기를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이 한창이던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 같은 선언으로 “국가 예산이 아니라 민간투자 형태로 대운하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믿고 대운하 컨소시엄 구성을 준비하던 국내 건설회사는 관련 작업을 중단했고 국토해양부는 해당 조직을 해체했다.

‘747’ 비전 역시 허공에 붕 떠 버렸다. 이 대통령은 7월 6일 일본 교도통신, 영국 BBC와의 합동인터뷰에서 “당초 경제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성장 잠재력을 키워가고 싶지만 앞으로 2년 정도의 경제 목표치는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2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747 비전은 단기 목표가 아니라 장기 목표”라고 답변했다.

이명박식 경제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던 공공부문 개혁도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정부는 21일 혁신도시로 이전할 공기업의 민영화를 지방 이전을 전제로 추진하겠다며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축소 가능성을 밝힌 데 이어 22일에도 이 같은 태도 변화를 확인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공기업 선진화 관련 당정협의 뒤 브리핑에서 “각 정부 부처의 토론회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한 당초 시안이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차 정부조직 개편 또한 상반기에 구체안을 마련하겠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계속 지연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쇠고기 파동의 여진이 남은 상태에서 공무원 사회까지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 MB 경제정책 궤도 수정 불가피

이처럼 정부의 핵심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이를 바탕으로 설계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도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MB노믹스는 ‘공공부문 구조조정+대운하 등 신성장동력 육성→규제 대폭 완화→기업투자 활성화→일자리 창출→소비 진작 등 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기초로 하고 있다.

우선 747 등을 기반으로 작성된 ‘연평균 60만개 일자리 창출’은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월 일자리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만7000명이 늘어나는 데 그쳐 3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증가폭을 보였다.

공기업 민영화도 대상이 크게 줄어들면서 공기업 매각을 통한 민생 경제 재원 충당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는 당초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개혁으로 향후 5년여간 60조 원의 재원을 확보해 젊은 층 일자리 마련, 교육 기회 확대 등에 투자한다는 프로그램을 세워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고유가 등 대외 환경이 불안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경제성장률 저하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닌 만큼 747 비전 등 세계 경제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부분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정치·사회적 변수와 맞물려 이를 극복하겠다는 현 정부의 개혁 의지가 퇴색하면서 상당 부분의 MB노믹스가 해체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공기업 민영화, 2차 정부조직개편, 일자리 창출 등은 정부가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않은 채 너무 일찍 손을 놓아버렸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1월 1일 일본 대장성식 개혁을 거론하며 공공부문 전면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제대로 시행조차 못하고 여론과 공직 사회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제부처의 고위 당국자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현 정부를 탄생하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핵심정책을 포기하면 앞으로 누가 이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주공-토공 先통합 後구조조정▼

정부, 내달 말까지 민영화 대상 확정키로

정부가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우선 통폐합한 뒤 중복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선(先)통폐합 후(後)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공기업의 경영 효율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장영철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22일 ‘공기업 선진화 관련 당정협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주공과 토공 통폐합 논의에서 구조조정을 먼저 하려다 보니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다”며 “통폐합 등 포괄적인 기능조정을 우선 완료한 뒤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을 2단계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두 기관이 합쳐지면 중복 인력이 생겨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며 “단 자연 감소나 명예퇴직 등으로 자연스럽게 내보내고 본인 의사에 반해 회사를 나가는 경우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경우에도 일정 기간 고용 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등 고용 안정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8월 중순부터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토론회와 의견수렴을 거쳐 8월 말까지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 여부를 확정하기로 했다. 또 전기 가스 수도 건강보험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이렇게 풀어라” 경제전문가 조언▼

“섣부른 시장개입 신뢰 잃어 원점서 재검토 대안 내놔야”

경제학자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MB노믹스를 일정 부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과 현재의 대내외 경제 상황이 크게 달라진 데다 MB노믹스 자체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고유가, 미국발 금융위기, 원자재 값 급등으로 747 등 MB노믹스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원래 계획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이른 시일 내에 대안을 만들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도 “기존에 하려고 했던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MB노믹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여건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 해법을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과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해법에 대해서는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았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가 섣불리 시장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조급증을 버리고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현재 단계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향후 경제정책 방향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는 “국민 사이에서 기대가 컸던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MB노믹스의 핵심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실망이 커지고 있다”며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처음에 약속했던 방향으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도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제를 살리고 서민경제를 챙기겠다는 MB노믹스의 기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 교수는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출범한 정부가 시작부터 레임덕에 빠져 있다”며 “일단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면서 다른 정책들을 끌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지금 국민이 고유가 등 대외변수에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며 “MB노믹스가 좌초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늘리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기업환경 개선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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