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기자의 눈/배극인]2006년 6월 워싱턴 vs 2008년 6월 광화문

입력 | 2008-06-30 02:57:00


2006년 6월 4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首都) 워싱턴. 한국에서 건너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원정시위대 40여 명은 백악관 주변의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미 무역대표부(USTR) 건물 주변을 돌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한국 원정시위대는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과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에서 자해(自害)와 폭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기우(杞憂)였다. 시위대는 순찰차가 이끄는 대로 행진했고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는 일도 없었다. 행진 도중 잠시 길바닥에 드러누웠지만 그뿐이었다. 1차 협상이 끝난 9일까지 이어진 시위는 한 번도 폭력시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2년 뒤인 2008년 6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은 전혀 달랐다.

반(反)정부 시위대는 절단기를 동원해 경찰버스를 자르고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유리창을 부쉈다. 깃대와 곤봉으로 안에 타고 있던 전경을 찌르고 경찰장비와 음식물을 탈취하기도 했다. 경찰을 무릎 꿇린 채 즉석에서 ‘인민재판’을 하고 집단 폭행을 가했다. 이런데도 일부 좌파 성향의 방송과 군소신문 등은 합법정부 경찰의 공권력 행사는 과장까지 해가며 문제 삼고 시위대의 명백한 불법 폭력행위에는 사실상 눈을 감았다.

두 시위를 주도한 핵심 세력은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이 워싱턴과 서울에서 벌인 시위 양상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

많은 전문가는 미국과 한국의 공권력 차이를 든다. 미국에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경찰의 통제를 벗어나는 시위에는 즉각 강력하게 ‘진압’ 하는 것이 당연시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존엄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일부 세력이 저지르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부인하는 모습을 외국인들은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법질서 준수 등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국가경쟁력의 한 핵심 요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집회·시위에 따른 생산 손실과 교통 혼잡 등으로 한국이 치른 사회적 비용은 최대 12조3000억 원에 이른다. 이제 우리도 이 문제를 애매한 양비론(兩非論)이 아니라 정면에서 바라볼 때가 됐다.

배극인 산업부 bae2150@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