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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윤상호]장교들의 한탕주의… 軍 사정기관 뭐했나

입력 | 2008-06-18 02:57:00


“다수의 피해자가 사기의 위험성을 눈치 채고도 당장의 이익만 좇아 ‘나 몰라라’ 한 것이 창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을 초래한 화근이었습니다.”
최근 현역 장교 3명의 400억 원대 금융사기 사건을 적발한 군 검찰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박주의’와 ‘한탕주의’의 그늘이 안보의 보루인 군에도 짙게 깔려 있음을 극명히 보여 준다.
피해자가 군인과 그 친인척을 포함해 750여 명에 달했지만 박모 중위 등이 1년 넘게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투자자들의 ‘대박주의’가 있었다.
군 검찰에 따르면 많은 피해자가 처음부터 ‘금융 피라미드’로 알고 문제점을 인식했지만 대부분 ‘3개월만 투자하고 빠지자’는 생각으로 입을 다물었다.
피해자들은 박 중위 일당이 약속한 3개월 뒤 ‘원금과 50% 확정 수익’에만 눈이 멀어 외부로 그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피해 범위와 규모는 눈 덩이처럼 불어났다.
군 검찰 관계자는 “대부분 3000만∼4000만 원씩 박 중위에게 맡긴 피해자들은 자신이 ‘초기 투자자’라고 여기고 3개월 뒤 1500만∼20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일부 피해자는 더 큰 욕심에 제2금융권에서 받은 고금리의 대출금과 수억 원의 뭉칫돈을 박 중위 일당에게 건네기도 했다.
주변에서 유능한 젊은 장교로 평가받던 박 중위가 검은 유혹에 빠진 것도 대박주의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 사채까지 끌어들여 5000만 원으로 주식을 하다 큰 손해를 본 그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대박’의 환상을 좇았고, 결국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박 중위 등은 1년 넘도록 펀드사 직원을 사칭하며 수억 원짜리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고, 강남 고급 룸살롱을 전전하면서 수십억 원을 탕진했지만 군 사정기관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사기 피해자 가운데 기무와 헌병 요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군 내 감찰기능이 유명무실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평소 지휘목표로 ‘전투복 입은 자는 전투 위치로’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군이 대박의 환상을 좇아 ’전투(錢鬪) 위치로’ 간 게 아니냐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일부 군인의 비행이 아니라 해이해진 군 기강 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군 안팎의 여론에 군 수뇌부가 귀 기울이길 바란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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