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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서영아]韓‘누가 잘하나’ vs 日‘모두가 함께’

입력 | 2008-01-17 02:56:00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걱정이 될 때가 가끔 있다. 성적 때문이 아니다. 5학년생인 딸아이에게서 남과 싸워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갈수록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저래서야 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일본 도쿄(東京)에서 꽤 부촌이라는 이 동네는 별나게 교육열이 센 편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졸업생의 90% 이상이 사립중학교에 진학한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대부분 입시학원에 다닌다. 공립중학교에 보내면 소위 ‘유토리 교육’ 때문에 아이가 바보가 된다는 소문이 파다한 반면, 상당수의 사립중학교는 일단 들어가면 대학 입학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명문 사립대들은 대개 부속 초중고교를 갖고 있어 ‘에스컬레이터식’으로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교육열도 한국과는 비교하기가 힘들다. 어느 재일동포가 말하기를 한국의 교육이념은 ‘누가 누가 잘하나’이고 일본은 ‘모두가 함께하자’라던가.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수험 열풍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가 함께하자’ 주의다. 대부분의 수업이 팀을 짜서 서로 도와가며 공부하는 방식이다. 엄마가 거들어야 하는 숙제 같은 건 절대 내지 않는다. 제 생활부터 챙길 줄 알고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을 키우는 게 일본의 공교육인 것이다.

일상생활 지도에서는 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는 얘기가 강조된다. 아이들에게 “넌 보통사람이다, 자신보다 남을 높이라”고 주입하는 것이다. 전철에서 발을 밟힌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본의 풍토는 이런 데서 나온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문제는 이런 여건에서 아이들은 “남들만큼만 하면 되고, 튀지 않는 게 좋다”는 소극적 자세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얼마 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 관련 조사 결과 때문에 일본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학력 순위가 떨어진 점도 그렇지만 학생들의 학습의욕이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난 게 문제였다. 주관식 기술 문제에서 외국 학생들은 틀리더라도 답을 쓴 반면 일본 학생들은 아예 빈칸으로 남겨둔 경우가 월등히 많았다.

한국에서는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사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길도 많지 않다. 교육 관리는 부모가 떠맡는다. 대학생의 학점 관리를 학부모가 따라다니며 해줄 정도로 자립과는 거리가 먼 교육, 경쟁심은 충만하지만 정작 공부와는 담을 쌓는 대학생들이 양산된다. 기회의 균등이 결과의 균등과 동일시되는 무차별 평등주의, 남의 자식을 밟고 내 자식만 성공하기를 바라는 이기주의도 기승을 부린다.

딸아이는 일본식 교육에 잘 적응하는 듯하다. 덕분에 그러잖아도 으슬으슬 춥다는 일본의 겨울밤이 더욱 춥다. 아이가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며 유일한 난방 수단인 히터를 못 켜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스스로를 ‘평범한 보통아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작은 실천에 만족해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편치만은 않다.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손해 보며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면서 교육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일꾼도 필요하고, 그들을 이끄는 리더도 있어야 한다. 일본식 ‘배려’ 교육이 의미가 있다면, 한국식 ‘경쟁’ 교육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둘을 조화시켜 건강하게 경쟁하는 리더와 세상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보통사람을 조화롭게 길러내는 교육은 없을까. 교육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