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2008 희망제작소, 현대중공업 ‘H독’ 건설 현장을 가다

입력 | 2008-01-01 02:58:00

그들의 굵은 땀방울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본다. 무자년 기업 투자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현대중공업의 ‘H독’ 건설 현장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연인원 3만 명이 투입돼 올해 10월 완공되는 H독은 최첨단 선박의 요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최재호 기자

“미래의 무기를 벼려라” 울산 현대중공업 해양생산부 신 독 공사 현장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측량을 하며 공사를 하고 있다. 울산=최재호 기자


“세계 1등 유지위해 쉼없이 투자”

굴착기 수십 대가 딱딱하게 굳은 땅을 쉴 새 없이 파낸다.

대기하고 있던 덤프트럭은 흙무덤이 채 쌓이기도 전에 흙을 퍼 나르고, 옆에서는 움푹 파인 지반을 다지기 위해 연방 쇠말뚝을 박아댄다.

안벽(岸壁)을 두툼히 쌓는 보강공사가 한창인가 하면 반대쪽에서는 1600t짜리 골리앗이 움직일 수 있는 선로가 놓인다.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현대중공업의 10번째 독인 ‘H독’ 건설 현장은 ‘추위’도 ‘새해’도 잊었다.

지금은 황량한 허허벌판인 이곳을 올해 10월 ‘최첨단 선박의 요람’으로 만들기 위해 현대 특유의 ‘불도저식’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보 지난해 8월 10일자 A2면 참조
현대重, 울산에 ‘제10 독’ 짓는다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최웅의 사업기획부 차장은 “100만 t급(적재용량 기준) 선박을 지을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을 1년 안에 짓는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라며 “H독은 2008년 한국 경제 부활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10년 잠든 투자를 깨운 현대중공업 H독

‘까치가 돌아왔다.’

1996년 초 제9독 건설을 끝으로 이렇다 할 만한 투자가 없었던 현대중공업이 약 12년 만에 다시 대규모 증설 투자에 나섰다. 그동안 부진했던 기업 투자가 기지개를 켜는 신호탄인 셈이다.

길이와 폭이 각각 490m와 115m로 세계 최대인 H독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손꼽히는 ‘부유식원유생산저장설비(FPSO)’ 전용 독이다.

FPSO는 심해의 원유를 뽑아 올려 저장했다가 유조선에 실어주는 이른바 ‘해상 정유공장’. 1000m 이상 심해저에서 작업할 수 있는 데다 기존 유정(油井)이 고갈되면 자리를 옮겨 다시 원유를 생산할 수 있어 반영구적이다.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심해저의 원유도 채산성이 맞아떨어지자 세계 조선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히트 상품’이다.

이 때문에 척당 가격이 15억∼20억 달러(약 1조4000억∼1조9000억 원)에 달한다. 척당 2억 달러인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천연가스운반선(LNG)에 비하면 최대 10배 비싸다.

현대중공업은 이 같은 가능성에 주목해 경쟁국들의 견제와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블루오션’이자, 세계 조선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무기’로 FPSO를 택했다.

김문현 현대중공업 상무는 “지난해까지 발주된 18척의 FPSO 가운데 12척을 현대중공업이 제작했다”며 “H독이 완공되면 FPSO를 연간 2척씩 수주할 수 있어 연 2조∼3조 원의 추가 매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한국 조선

한국 조선업은 국가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미래를 내다본 공격적 투자로 한국 경제의 든든한 ‘대들보’ 구실을 해 왔다.

1972년 창립된 현대중공업은 한국 중공업의 견인차로서 한국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일쇼크 여파로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진 1980년대에는 자동화 설비 투자로 세계 수주량의 절반을 차지하던 세계 1위 조선국인 일본을 제치는 계기를 만들었고, 1990년대 초 대규모 설비투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화를 벌어들이는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국조선협회 한장섭 부회장은 “1943년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 83%였던 미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일본이 30년 세계 조선 패권을 잃은 것은 투자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며 “세계 1등 한국 조선의 비결은 미래를 내다본 쉼 없는 투자였다”고 설명했다.

새해 한국 경제의 부활을 꿈꾸는 현장은 조선업뿐만이 아니다. 때마침 내년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기업들은 투자 확대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기업인 등 경제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기업인의 74%가 올해 기업 투자 확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경제인들도 100명 중 65명에 이르렀다.

올해 한국 경제가 넘어야 할 산은 산적해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세계 경제가 잔뜩 웅크리고 있고, 원유 등 원자재 가격 폭등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도전하는 자만이 꿈을 꿀 수 있는 법,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는 기업의 의지 앞에 불가능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울산=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