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오찬을 겸한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DJ는 “노 대통령이 재임 중 큰 업적을 남겼다”고 칭찬했고, 노대통령은 “김 대통령께서 길을 열어줘,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성과가 있었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 신봉자들끼리 만났으니 오죽했으랴만 역사적 평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나라 안팎에서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게 쏟아지고 있다. “북핵 문제는 제대로 거론도 못한 채 일방적인 대북(對北) 지원만 약속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얼마를 더 퍼 줘야 할지 세금 낼 국민의 심정도 헤아렸다면 DJ와 노 대통령이 ‘둘만의 칭찬 덕담’을 즐기고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0·4 남북 정상선언의 문제점을 찬찬히 짚어 보고, 그 역기능과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 줬어야 옳다.
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중 DJ만 초청해 설명회를 가진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청와대 측은 “방북 전 DJ로부터 조언을 들으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군색하다. 10, 11일 헌법기관장들과 각 정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부르는 것도 사전에 조언을 못 구해서인가. 차라리 ‘DJ로부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어서’라고 하는 편이 솔직하다. 대통령이 국가 대사(大事)가 있을 때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대다수 국가의 보편화된 관례다. 대통령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은 DJ밖에 없다는 얘기다.
범여권에 모종의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난장판 속에서 친노(親盧) 대 비노(非盧)의 대결 양상을 띠자 ‘서로 힘을 합치라’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박지원 씨가 비록 DJ의 비서실장 자격이라 하더라도 이 자리에 동석한 것도 어색하다. 행여 박 씨가 대북송금 특검으로 3년 5개월간 옥고를 치른 데 대한 위로나 사과 차원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