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변양균-신정아 가까운 사이” 전해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이 10일 청와대에서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이 그동안 해명과 달리 신정아 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과 ‘가짜 예일대 박사’ 신정아(35·여) 씨가 2년여 전부터 최근까지 300∼500통의 e메일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권력층의 신 씨 비호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적절한 관계’, 청탁으로 이어졌나=지난달 24일 신 씨와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자 변 실장은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신 씨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4일 신 씨의 서울 종로구 오피스텔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변 실장이 신 씨가 동국대 교수로 임용된 2005년 9월 이전부터 최근까지 신 씨와 주고받은 e메일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을 확보했다.
e메일 중에서 변 실장이 신 씨에게 보낸 100∼200통의 e메일은 대부분 ‘연애편지’였다고 한다. 실제로 수사팀이 지난 주말 검찰 수뇌부에 변 실장이 작성한 e메일 내용을 보고하자 “믿기지 않는다”며 철저하게 재확인 작업을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변 실장이 신 씨와 매우 가깝게 지내면서 e메일을 주고받는 시점에 신 씨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에서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고, 또다시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으로 선임된 점 등에 주목하고 있다.
불교계 채널이 많은 변 실장이 조계종 종립인 동국대의 신 씨 교수 임용 과정이나 신 씨의 가짜 박사 의혹 등에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촬영: 김동주 기자
변 실장은 신 씨의 가짜 학위를 처음 거론한 장윤 스님을 7월 8일 만나 “더는 문제 삼지 말라. 조용히 있으면 적당한 때 동국대 이사직에 복직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광주비엔날레재단 역시 정부의 예산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에 변 실장의 청탁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 씨가 보낸 e메일에 어떤 청탁 내용 담겼나=검찰은 4일 신 씨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살았던 서울 종로구 오피스텔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e메일 서버 등을 확보했고, 삭제된 파일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신 씨가 변 실장과 주고받은 e메일을 확보했다.
서울서부지검 구본민 차장은 “신 씨가 (e메일 내용이 담긴 파일을) 없애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며 “e메일의 종류가 여러 가지여서 현재 추가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신 씨가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들이 “내용이 아주 노골적”이라고 밝힌 내용을 e메일로 주고받은 두 사람이 각종 청탁도 e메일로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검찰은 신 씨가 변 실장에게서 받은 e메일을 삭제하지 않은 반면 변 실장에게 보낸 e메일을 집중적으로 삭제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신 씨가 변 실장에게 보낸 e메일에는 각종 청탁 내용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어떤 청탁 내용이 포함됐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수사팀의 과제”라고 말했다.
▽변 실장만 비호했을까=신 씨와 변 실장이 주고받은 e메일을 검찰이 확보함으로써 신 씨 비호 세력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변 실장이 동국대나 광주비엔날레 관계자 등에게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확인되면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처벌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한 검찰은 미국으로 도피한 신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조만간 미국 측에 수사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나머지 인사들 조사는 어떻게=우선 동국대 해당 학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 씨 임용을 강하게 밀어붙인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에게 의혹의 눈길이 더욱 쏠리고 있다.
홍 전 총장은 신 씨의 교수 임용은 물론 휴직 및 보직 변경을 주도한 인물이다.
홍 전 총장의 측근도 “홍 전 총장이 신 씨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본인만이 안다”고 말할 정도로 그가 신 씨를 각별하게 챙긴 이유를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른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는 홍 전 총장에게 신 씨를 소개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이 사람이 계속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신 씨의 허위 학력 폭로에 앞장서고도 정작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계속 거부한 채 잠적한 장윤 스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