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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파키스탄 ‘알 카에다 소탕’ 신경전

입력 | 2007-07-24 03:03:00


9·11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가 오랜 침묵을 깨고 세력을 규합하면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중앙정보국(CIA)은 지난주 파키스탄 서북쪽의 아프가니스탄 접경 산악지대를 알 카에다가 뿌리를 내린 ‘테러의 진앙’으로 지목했다. 문서 분량이 단 2쪽에 불과한 극비 사안이었지만 CIA, 국방정보국(DIA) 등 16개 정보기관이 만장일치로 이 같은 결론에 동의했다.

부시 행정부가 처한 문제는 “독재국가에 이렇게 해 줄 필요가 있느냐”는 비난까지 감수해 가며 파키스탄을 특별히 관리해 왔다는 데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부시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22일 파키스탄 내 목표물 공격 가능성을 거론했고, 파키스탄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21일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알 카에다와 탈레반 소탕 노력을 지지한다”며 변함없는 우호 발언을 반복했다.

▽미-파키스탄 뜻밖의 설전=일요일인 22일 미국과 파키스탄은 ‘떠오르는 우방국’답지 않게 설전을 벌였다. 미국의 최고위 인사들이 먼저 파키스탄을 자극했다.

‘파키스탄발(發) 알 카에다 위기론’ 보고서의 최종 책임자인 마이크 매코널 미 국가정보국장은 “오사마 빈라덴이 살아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파키스탄 국경지대가 은신처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프랜시스 타운센드 백악관 국토안보 보좌관은 CNN 방송에 출연해 “미국인 생명 보호라는 최우선 과제 앞에서는 어떤 옵션도 테이블에서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목표물’이 파키스탄 내부에 있더라도 필요하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아프타브 셰르파오 파키스탄 내무장관은 즉각 “빈라덴이 파키스탄에 있다면 정보를 달라. 정보가 있으면 잡겠다”며 반발했다. 외교부 대변인도 ‘파키스탄이 보여 온 헌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비난을 계속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담은 논평을 내놓았다.

▽“알 카에다 발호할 공간 마련”=9·11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의 원래 근거지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구소련이 철군한 뒤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지역의 권력 공백을 메운 것. 2001년 미국이 무력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친미 성향의 정권을 세우면서 알 카에다는 북부 산악지대의 ‘동굴 속 조직’으로 위축됐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미국의 친구’로 통하는 파키스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산악지역의 부족장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이 지역이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해방구’가 됐다고 미 CIA는 분석했다.

매코널 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파키스탄 정부가 알 카에다를 소탕하기는커녕 새로운 조직원을 모집하고 훈련할 공간을 마련해 줬다”고 말했다. CIA는 2006년 미수에 그친 런던발 항공기 테러도 알 카에다가 ‘파키스탄 산악지대’에서 준비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백악관은 이라크에서 미군을 공격하는 무장 세력의 상당수도 이곳에서 훈련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훈련받은 알 카에다 조직원이 이라크에 잠입하면서 이라크 치안이 더 수렁에 빠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후유증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무샤라프 대통령의 결정을 추인한 전력이 있다. 현역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한 무샤라프 대통령은 영어가 유창하고 이슬람 색채가 덜한 ‘세속 정치인’이다. 그가 산악지대 토착세력과 알력을 빚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약해진다면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파키스탄 지배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선택의 폭 좁아 고민=이처럼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다. 현재로선 재래식 무기 제공 및 경제원조의 확대로 파키스탄의 민심을 다독이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캠프데이비드 별장으로 초대한다.

미국이 내놓을 군사행동도 ‘비밀공작 후 발뺌’이라는 고전적 공작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프간 주둔 미군을 동원한 대대적인 공격이나 정밀 무기를 사용한 족집게 폭격은 파키스탄 내 반미감정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없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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