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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줄타기 외교’ 中에서 美로 기우나

입력 | 2007-06-23 03:01:00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평양을 전격 방문한 21일 중국은 양제츠(楊潔지) 외교부장이 다음 달 초 방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의 고위 외교 당국자들이 잇달아 평양을 찾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지만 북-미의 급속한 접근을 중국이 우려해 견제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온다. 그만큼 북-미-중의 관계는 요즘 미묘하다.

실제로 3월 초 뉴욕을 방문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에게 “미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알지 않느냐. 중국을 견제하려면 북한을 끌어안아라”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중국을 동아시아의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stakeholder)’로 인정하면서도 미래의 강력한 경쟁자로 여기고 있는 점을 지적해 북-미의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국제관계에서 북-미-중 간에 일고 있는 의미심장한 변화를 살펴본다.》

▼北-美, 新 밀월시대▼

올해 1월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 부상과 미국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가 6자회담의 장(場)인 중국 베이징(北京)이 아닌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것은 북-미 간에 긴밀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복안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이 회동에서 미국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된 북한 자금 중 대량살상무기(WMD) 거래로 벌어들인 돈까지 모두 풀어 주기로 약속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최근 1년 8개월 남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임기 중에 북한의 핵 폐기가 가능하고 이 경우 2008년 내에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과 장밋빛 전망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후 6, 7년간 이어졌던 양국 간 밀월시대가 재개되는 서막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직후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김영삼 정부는 북-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으로 한국이 소외될 것을 우려해 중국을 포함하는 4자회담 카드를 꺼냈다는 게 당시 정부 당국자들의 증언이다. 중국이 자연스럽게 북-미 간의 과도한 밀착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1996년 4월 한미 정상이 4자회담 개최에 합의하자 북한은 한동안 “일단 3자회담을 진행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포함하는 ‘3+1’ 회담을 열자”고 버티다 4자회담에 응했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 간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양측을 오가며 활로를 모색했던 것처럼 북-미관계 개선을 발판으로 미-중 간 줄타기 외교를 시도했던 것.

지금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타기에 다시 나섰다. BDA은행 문제가 해결됐고 숙원이던 힐 차관보의 방북도 성사돼 미국에 바짝 다가설 명분을 얻었다.

일각에선 미국도 북한의 밀착 전략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장기적으로 북한을 대(對)중국 견제용 ‘안보기지’로 만들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지나치게 가까워질 경우 한국과 일본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각각 맺고 있는 동맹관계가 북-미의 밀착으로 훼손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北-中, 불신의 계절▼

북한의 핵실험 계획이 신빙성 있게 나돌던 지난해 10월 7일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이틀 후 핵실험을 감행했다. 후 주석은 당 대외연락부의 정보력 부재를 강하게 질타하고 “대외연락부는 북핵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중국이 북의 핵실험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것은 북-중 혈맹관계의 축이었던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 간의 ‘당 대 당’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대북정책의 무게중심이 행정부인 국무원 산하 외교부로 쏠리면서 북-중관계가 국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국가 대 국가’의 메마른 사이로 변하고 있다.

김흥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당 대 당’ 관계의 특징이 ‘끈끈한 정’이라면 중국 외교부와 북한 외무성은 하나하나 따지고 짚어 보는 사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나온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 주요 인사들의 방북을 분석한 결과 당 인사의 방북은 2005년 8차례에서 2006년 1차례로 급감했다. 반면 국무원 인사의 방북은 2005년 7차례, 2006년에도 7차례였다.

특히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지금까지 7개월 동안 방북한 중국 주요 인사는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과 류훙차이(劉洪才) 당 대외연락부 부부장뿐이다.

이런 흐름은 중국 정부가 대북정책 책임자에 미국통이나 유럽통을 앉힌 인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9월과 올해 4월 각각 주 북한 대사와 북핵 전담대사로 임명된 류샤오밍(劉曉明)과 천나이칭(陳乃淸)은 임명 전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한 경력이 전혀 없다.

이번에 BDA은행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도 중국의 기여가 거의 없었다는 게 한국과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당초 북한은 중국은행의 북한 계좌로 자금을 송금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중국은 중국은행의 신인도 하락을 우려해 이를 거부했다. 이에 미국과 한국이 러시아를 설득해 러시아 중앙은행을 거치는 송금 방식을 고안해 냈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불신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도 북한을 믿지 못한다.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중국 정부 내에 북한이 미국과 밀약을 맺고 중국을 배척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