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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아’ 김기덕 감독, 세상과 타협하다

입력 | 2007-03-30 21:45:00


지난해 '은퇴 번복' 논란을 불렀던 '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전작 '시간'의 시사회에서 새까만 선글라스와 굳게 다문 입으로 한국 영화계의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김 감독. 8개월여 만인 3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씨네코아에서 신작 '숨'(제작 김기덕 필름)의 시사회를 가진 그는 "그때와 지금 달라진 상황은 없지만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고 절 도와주는 분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계속 작품을 하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김 감독은 평소 트레이드 마크인 야구모자에 캐쥬얼한 차림 그대로 등장했지만 표정을 감추기 위한 짙은 선글라스 대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또 취재진의 질문에 회피하며 날카로운 인상을 풍긴 지난해와 달리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언론을 대했다.

무엇이 그에게 이러한 심경 변화를 일으켰을까.

김 감독은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둠이 밝음이 되고 밝음이 어둠이 되는 역설적 철학을 배운다. 지난 해가 제겐 그런 시기였다"며 "당시 20만명이 내 영화를 안보면 은퇴하겠다는 말은 물리적인 욕심보다 한국영화 다양성의 측면에서 1천만 관객 시대에 1/50 정도는 다른 생각을 하길 바라는 저만의 갈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감독은 이어 "전 지난 10년간 저예산 감독으로서 칭찬도 많이 들었고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자신한다. 또 감독으로서 행복하고 더이상 바랄게 없다"면서 "제가 바라는 건 한국문화의 다양성이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전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다. 앞으로도 제가 민감한 말을 할지라도 빨리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김 감독은 "요즘 무기력해지고 욕심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10개 정도 있다. 저를 도와주는 분들과 누가 뭐라해도 열심히 만들겠다"고 비온 뒤 굳어진 마음을 다잡았다.

또한 김 감독은 "이번 '숨'은 생각보다 어렵게 찍었다. 제작비는 3억7천만원 정도에 총 9회차로 촬영했다"며 "자본은 어려웠지만 환경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3억 미만의 자금으로 35m 영화를 찍을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더이상 관객수에 대한 얘기는 안한다. 제작비를 줄이는 게 한국영화가 살 방법이다. 한국영화가 우수한 평가를 받을 기회가 분명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가주의 김기덕 감독의 14번째 영화 '숨'은 남편(하정우)의 외도를 알게 된 여자 '연'(박지아)이 자살을 기도한 사형수 '장진'(장첸)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연다는 줄거리. 대만의 청춘스타 장첸이 주연을 맡았고, 메가폰을 잡은 김 감독이 비중있는 조연으로 깜짝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김 감독이 지난 '시간'을 잊고 관객과 '숨' 쉴수 있을지는 4월19일 확인할 수 있다.

이지영 스포츠동아 기자 garumil@donga.com

[지난해 8월 '시간' 시사회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사진 좌)과 최근 '숨'의 시사회에서 한층 밝아진 표정의 김기덕 감독.]

김기덕 14번째 영화 ‘숨’ 시사회 생생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