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는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출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장지종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강신호 전경련 회장.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선출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전경련은 다시 회장단의 의견 수렴을 거쳐 한 달 내에 임시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을 확정키로 했다. 이때까지는 강신호(동아제약 회장) 현 회장이 회장 직을 계속 수행한다.
하지만 회장단 간 갈등과 반목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어 앞으로의 차기 회장 추대 과정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전례 없는 회장 선출 실패
전경련은 27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경련회관에서 총회를 열어 차기 회장 선출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961년 전경련 창설 이래 총회에서 회장을 선출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준성(이수그룹 명예회장) 전경련 고문, 강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유진 풍산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 등 6명은 회의를 정회한 채 1시간여 집중 논의를 벌였지만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김 고문은 “이번에는 회장단 회의에서 단일 후보를 총회에 올리지 못했으며 오늘 모인 인원만으로는 재계 의견을 대표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 전경련 회장단 ‘내분’ 조짐
강 회장이 일부 회장단의 반발에 부닥쳐 7일 연임 포기 결정을 내린 이후 전경련은 여러 후보를 놓고 회장단 의견을 수렴했지만 사전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 26일 오후 강 회장 주재의 회장단 모임을 포함해 6차례의 간담회를 가졌지만 번번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4, 5명의 후보군이 거론됐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전경련은 막판에 조석래 회장과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으로 후보군을 좁혀 ‘차기 회장을 맡아 달라’고 집중 설득하는 한편 회장단의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반대표가 적지 않았고 이 명예회장은 극구 고사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이 명예회장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주위에서 여러분이 ‘한번 해 보라’고 권유했고 지난 주말에도 강 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회장 직을 맡아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은 또 “70세가 넘은 사람은 전경련 회장 직을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해 조(72) 회장에 대한 반대 의사도 분명히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이어 “내가 고사하는 대신 회장단 가운데 한 사람을 추천했으나 ‘나이가 어려 곤란하다’는 반응이었다”며 “내일 모레 환갑인데 어리다는 말인가”라며 ‘세대교체론’을 주장했다.
김준성 고문은 “(회장 선출이 어려운 것도) 대기업들이 전경련 회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4대 그룹의 소극적인 역할을 간접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 ‘표류’하는 전경련
전경련은 한 달 내에 회장단이 합의 추대하는 차기 회장 후보를 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조 부회장은 “명백한 의사 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회장 직을 맡을 의사가 있는 회장이 두 분 이상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박삼구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그룹 경영에 전념하겠다’는 등의 이유로 회장 직을 고사해 왔다.
만장일치로 회장을 선출하는 현재의 전경련 회장 선출 방식도 회장 선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명의 반대라도 있으면 추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차기 회장을 언제 확정짓느냐에 관계없이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전경련은 재계 대표단체로서의 위상이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해체하고 대한상공회의소와 합치는 게 낫다’는 전경련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다.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