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이 8000명의 보스니아 이슬람 교도들을 학살한 ‘인종청소’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세르비아 정부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하자 보스니아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J는 26일 옛 유고연방에서 자행된 학살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유엔이 당시 안전 지역으로 지정한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인을 학살한 것은 “대량 학살(genocide) 행위”라고 인정했다.
ICJ는 또 세르비아 정부가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에 상당한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대량 학살을 공모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국가적 범죄라는 원고 측 주장을 배격했다. 또 원고 측이 요구한 배상 요구에 대해서도 “금전적 보상은 적절치 않다”고 기각했다.
그러나 ICJ는 세르비아 정부가 대량 학살을 막지 못했고, 집단 학살의 주범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대량학살에 관한 유엔협약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옛 유고연방에서 지속된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해됐고 이 중 3분의 2가 보스니아계 이슬람인이었다. 보스니아 정부는 지난해 2월 세르비아를 전범 혐의로 ICJ에 제소했다. 한 국가가 국가를 상대로 대량 학살 혐의의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1948년 ICJ가 창설된 이래 대량 학살 행위를 인정한 것도 처음이다.
보스니아 이슬람 주민들은 ICJ 법정 앞에서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네보이사 라드마노비치 보스니아 대통령위원회 위원장은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보스니아 주민들은 매우 비통해하고 실망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이 이 지역에 새로운 긴장을 조성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7일 ICJ가 원고와 피고 측 주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냄으로써 결과적으로 세르비아의 고립을 원하지 않는 서구 국가들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했다고 보도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