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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백형찬]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공연

입력 | 2007-01-06 03:02:00


며칠 전 연극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구경하러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 갔다. ‘크리스토퍼 빈의 죽음’이 공연되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영화 시나리오로 만든 시드니 하워드의 작품이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보스턴의 시골 마을, 의사인 헤게트 집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그림 위조 전문가, 그림 장사 하는 화상(畵商), 미술평론가. 이들의 방문으로 조용한 가정이 시끄러워진다. 크리스토퍼는 10년 전에 헤게트 집에 머물던 환자였다. 그는 화가였는데 알코올의존증과 폐렴으로 죽었다. 낯선 사람들은 바로 크리스토퍼가 남긴 작품을 싼값에 구매하려고 왔다. 당시 뉴욕에서는 그의 작품이 최고 가격으로 거래되는 중이었지만 헤게트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예술작품을 놓고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연극이었다.

예술가는 살아선 호강을 못한다. 늘 가난과 싸우다가 병들어 죽는다. 실제로도 그렇고 문학작품 속에서도 그렇다. 예술가는 죽어야지만 작품이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호강하는 사람은 후손 또는 그의 작품을 싼값에 산 사람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고 모차르트가 그랬다. 한국에서는 이중섭이 그랬다.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서 헐벗은 가족과 함께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그림을 그렸던 가난한 화가. 그릴 종이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렸던 조그만 그림이 이젠 부르는 게 값이 되고 말았다.

문화선진국에서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정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 미국의 경우 예술가에 대한 대표적인 지원 프로그램으로 ‘펠로십 앤드 아너스(Fellowship and Honors)’를 들 수 있는데 문학연구비는 신인이나 중견 작가에게 집필에 몰두할 시간과 경비를 주기 위해서다. 재즈 마스터스 공로상금은 살아 있는 재즈의 거장에게 음악 분야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지원하며 민족유산 공로자 지원금은 문화유산을 알리는 데 전 생애를 바친 예술가에게 준다.

프랑스는 예술가를 보호하고 후견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아예 예술가의 지위를 법으로 규정했다. 노동법은 공연예술가 음악가 작가가 고용 사회보장 유급휴가 퇴직·실업수당을 받을 권리까지 인정한다. 예술창작에 대해서도 보호 우산을 만들었다. 프랑스 문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예술가가 창작 의욕을 잃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있다.

가난한 예술가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우리나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참여정부 들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이 부쩍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지방자치단체도 각종 문화재단이나 기금을 만들어 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봄비가 골고루 대지를 적시듯 정작 도움이 필요한 예술인들에게 손길이 뻗치고 있는지를 정책 당국뿐 아니라 예산 집행 기관들은 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정부의 지원도 빛이 날 테고 보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작은 일을 챙기는 것부터가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비(非)언어극인 ‘점프’가 최근 영국 런던 콜리시엄 극장에서 열린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서 공연돼 찰스 왕세자 부부를 비롯한 2300여 관객에게서 큰 박수를 받았다.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는 조지 5세 때 시작돼 78회째를 맞았다. 영국 여왕이나 왕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이나 이번 공연에는 찰스 왕세자 부부가 왕실을 대표해 참석했다. 수익금은 전부 은퇴한 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자선기금으로 기부됐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지도층 인사들이 가난한 예술가를 돕는 공연에 참석할까?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