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감식 정보 데이터베이스(DB)만 구축돼 있었더라면….”
최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의 검사들은 특수강도 강간 등의 혐의로 8월 구속된 양모(28) 씨가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올해 발생한 10여 차례의 이른바 ‘묻지 마’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8월 양 씨 사건은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검찰은 관내 경찰서에 미제로 남아 있는 비슷한 유형의 강간 사건 기록을 넘겨받아 4개월 가까이 추가 수사를 했다.
그리고 올해 4∼9월 경찰에 신고된 10여 명의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서 채취해 둔 피의자의 유전자 정보가 양 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추가로 기소했다.
양 씨의 엽기적인 성폭행 행각을 하나씩 밝혀낼 때마다 경찰과 검찰은 “미리 막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더해 갔다.
양 씨는 15세 때 특수강간죄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후에도 주거침입, 절도, 강도죄 등으로 인생의 3분의 1가량인 9년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양 씨가 마지막으로 교도소를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결국 출소하자마자 무차별적인 성폭행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피해 여성 중에는 꿈 많던 명문대생 3명과 가정주부 등도 있었다. 이들은 범행을 당한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가정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통상 성폭행 범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이 아쉬워하는 대목은 이미 성폭행 등 여러 강력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 양 씨의 유전자 정보만 보관하고 있었더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양 씨가 검거됐던 8월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유전자 감식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도입 논의가 있었던 이 법안은 또다시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여 올해도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정보 입력 대상의 확대 가능성과 무죄 추정 원칙 훼손, 이중처벌 논란 등 이 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론도 나름대로 타당성과 근거를 갖고 있다. 관리 주체, 정보 입력 시기, 보존 기간 등 풀기 어려운 문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양 씨를 일찍 검거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범죄의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빨리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때다.
조용우 사회부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