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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 칼럼]대한민국은 지금 내전 중인가

입력 | 2006-12-11 19:47:00


이념과 정견이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를 정당이라고 정의한다면 열린우리당은 진정한 의미의 정당이라고 하기 어렵다. 나쁜 정당이라고 헐뜯는 것이 아니라 조기축구회나 애국청년회 같은 동아리 성격의 단체라는 뜻이다.(물론 열린우리당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이 당의 인적 구성을 보면 정치적 이념이랄 것도 없는 사람들, 혹은 있어도 서로 크게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그냥 모여 있는 모습이다.

모래시계처럼 가운데 부분이 잘록한 물체는 작은 충격에도 깨어지기 쉽듯이 조직원들의 이념 분포가 그런 형태로 양극에 몰려 있는 열린우리당 역시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좌파와 우파, 자칭 진보와 보수라는 이질적 존재들이 단지 여당이라는 권력의 단맛에 이끌려 한 배에 탔기 때문에 이 당의 분열은 출발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정치에서 분열을 유발하는 가장 큰 충격은 보통 대선을 앞두고 나온다지만 구성원들의 호전적 기질을 고려할 때 열린우리당의 내홍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그들은 싸움기술(전술)로 대권을 잡았고, 집권 후에도 싸움판을 벌여 나름대로 재미를 보아 온 전문 투사들이기 때문이다. 싸움으로 흥한 이 정당이 싸움으로 몰락할지 모를 상황을 맞은 것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성경의 경고 그대로이니 과연 진리는 오래고도 새롭도다.

여당분쟁 국민 공감받기 어려워

정당의 존립 목적은 집권이며 그 과정에서 정치 집단 간 경쟁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치에서 갈등과 대립 그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여권의 분쟁은 그 원인과 목적 때문에 국민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 즉 싸움이 국가 중요정책에 관한 여당 내 갈등, 혹은 당-청(黨-靑) 간의 이견이라는 건전한 이유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 여당과 청와대 양쪽의 지지율이 모두 한 자릿수 가까이로 추락하자 그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따지면서 비롯됐다. 싸움의 목적 또한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권 잔여 임기 동안의 정치 주도권과 차기 총선에서 국회의원들의 공천 밥그릇 문제에 있을 뿐이다.

정부와 여당의 큰 임무 중 하나는 사회에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싸움 전문가들이 대권을 잡아 정부 여당을 차지했으니 그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사회의 분쟁을 수습해야 할 사람들이 싸움의 주인공이 되어 말릴 주체가 없는 채로 이 나라는 4년 가까이 흘러온 것이다. 정권 초반부터 나라 전체가 싸움판이 되어 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집권 직후 대통령이 검사들과 TV 생중계 아래 설전을 벌인 것은 집권세력이 싸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효시였다. 국민은 국민대로 좌우로 갈려 서로 보수꼴통이네 빨갱이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인 듯 으르렁거렸다. 인터넷에는 연일 욕지거리 댓글이 흘러넘치고 국회에서는 종종 난투극이 벌어져 돌발영상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다. 세계적 연구 결과를 냈다던 어떤 과학자를 놓고 사기꾼이라고 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과 그를 구세주처럼 경배하는 열혈 팬들 사이의 격전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법원과 검찰은 드높은 자존심을 걸고 한판 승부를 겨뤄 세상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 국민과 나머지 국민은 정부의 주선 아래 징벌성 부동산 세금의 정당성을 놓고 남의 나라 사람들처럼 살벌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 사태로 경찰이 화물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트럭을 에스코트해야 하는 코미디도 여러 날 연출됐다. 전경과 시위대가 충돌하지 않았던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이 나라는 갈등과 충돌로 날이 밝고 날이 저물었다.

황폐해진 사회 바로잡으려면

마치 프로레슬링 심판이 선수들과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고 관중도 여기저기서 뒹굴며 격투를 벌이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말싸움, 몸싸움 그리고 정신적 갈등은 현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이요, 가장 큰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온통 격투기장이 되어 버린 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 그리고 황폐해진 국민 정서를 순화시키고 혼탁해진 정신을 정화하는 것, 그것은 다음 정권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그때까지 견디는 것은 국민의 숙제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