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도덕이 무너진 사회에 법은 설 자리가 없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장 후보자들에 대해 청와대가 직무능력과 전혀 상관없거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여과 없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이 땅에 법치주의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자료원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몰라도 인사검증 과정에서 공직 후보자들의 사생활이 문제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된 사생활의 공개 주체가 청와대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하기야 최종 후보자들에 대해 직무능력이 아닌 도덕성을 이유로 재공모를 지시했다니 청와대의 막강한 힘에 대해 할 말이 없지만 법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모든 과정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법’에 따르면 영상자료원은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으로 원장의 임용권자는 문화부 장관이고, 게다가 그 자리는 공모직이다. 그렇다면 인사 검증 주체는 문화부인데 어떻게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했단 말인가.
설혹 청와대가 직접 인사 검증을 하지 않고 검증 결과만 보고받았다 하더라도 공무원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엄수해야 할 의무(국가공무원법 제60조)가 있는데 어떻게 그러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할 수 있는가.
물론 업무상 알게 된 비밀 엄수 의무가 공익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적으로 공표할 수도 있지만 그 예외 사유에 타인의 사생활은 포함되지 않는다. 비록 공인의 경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생활의 자유가 다소 위축된다 하더라도 임용과 관련해서는 ‘국가인사청문회법’에 규정된 대상자만 인사 청문을 할 수 있고 그런 경우에도 사생활 폭로는 인격권 침해에 해당돼 청문을 할 수도 없다.
하물며 청문회 대상자도 아닌 영상자료원장에 대해, 그것도 이제는 공직 후보자도 아닌 자연인에 대해 확인되지도 않고 본인들도 부인하는 사실을 임용권자도, 검증 기관도 아닌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에 공표를 하다니!
이러한 행위는 후보자들에 대한 사생활 침해인 동시에 명예훼손이고 비밀 엄수 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가 재공모를 지시한 이유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다니, 청와대가 살기 위해 후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말 아닌가.
가장 먼저 법을 지키고 법 이전에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최고 핵심 권력기관인 청와대에서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파심에서 한마디 더 하자면 자연인에게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듯이 법인에는 영업비밀이 생명이다. 그런데 최근 신문발전위원회가 신문발전자금 융자 신청을 받아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마이너 신문들이 비공개를 전제로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담보가 부족하다’는 등 특정 신문의 영업 상황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비공개를 전제로 제출된 자료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공표하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규모 신문들 또는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신문들의 영업 비밀은 침해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정권이 직접 만든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 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의도가 전자든 후자든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다.
융자에 필요한 담보조차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열악한 언론사에 정부가 무상으로 운영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도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특정 언론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이 가져올 부정적인 여파도 우려스럽다.
법 이전에 도덕성 회복, 아니 그 이전에 신뢰 보호는 민주사회, 법치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진정 이 정권은 모른단 말인가.
박선영 가톨릭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