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인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는 일제하의 조선민족 대표가 되어 통분의 질주를 거듭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곧이어 남승룡 선수가 3위로 들어왔다. 조선 청년 둘이 1, 3위를 차지하자 세계가 경악했다. 소식을 접한 소설가 심훈은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시의 말미에서 이렇게 외친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이제도 이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민족이라고 부를 터이냐!”
잠시 후 시상대에서 환희와 감격은 실종된다. 일장기 두 개가 나란히 떠오르고 일본 국가가 연주된다. 고개 숙인 식민지 청년 손기정은 우승의 영광이 일본에 바쳐졌다는 슬픔을 감내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타까움은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진다.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고 싶은 충동은 자연스러웠고 당시 동아일보의 용감한 기자는 이를 감행했다. 관계자들이 투옥 및 고문 등 온갖 곤욕을 치르고 급기야 동아일보가 무기 정간을 당해야 하는 치욕의 시대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조국을 되찾고 1946년 8월 손기정의 우승 10주년 기념행사가 덕수궁에서 치러지는 자리에 김구, 이승만이 참석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김구는 말한다. “나는 손기정 군 때문에 세 번을 울었다. 그의 우승 소식을 접하고 감격하여 울었고, 헛소문이었지만 그가 일본군이 되어 필리핀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에 슬퍼서 울었고, 조국 광복을 맞아 그를 다시 재회해 기뻐서 또 울었다”라고….
손기정은 고향이 신의주였지만 남북 분단 뒤 대한민국을 선택해 한국 체육의 기둥으로 활약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황영조 선수 우승을 지켜보고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한다. 조선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우리 체육사와 함께해 온 체육계의 거성으로서의 위상도 분명하지만 그의 우승은 우리 민족 최초의 세계적인 승리라는 점,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최고의 열악한 상황에서 이룩해 낸 민족적 승리라는 점에서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다.
얼마 전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장소는 손기정이 우승하고 시상식이 있었던 바로 그 베를린 메인스타디움이었다. 지금도 월드컵대회 결승전을 치러도 될 만큼 웅장한 스타디움에서 1936년 독일은 나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히틀러의 지휘 아래 역대 어느 대회보다도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냈다. 손기정은 그런 올림픽에 파견되는 일본 내의 까다롭고도 차별받는 엔트리 선발 과정을 힘들게 통과한 뒤 본선에 참가해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세계의 건각을 모두 따돌리고 우승 테이프를 끊었다.
바깥으로는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고했고 안으로는 암울하기만 했던 조국의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환희를 선물하였던 손기정….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는 식민 정책이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임에도 우승 후 모든 사인을 자신의 한글 이름으로 해 주었던 용감한 애국 청년 손기정! 민족차별로 유명했던 히틀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동양을 대표했던 손기정!
세계 제패 70주년이 되는 올해, 손기정은 외롭다. 이젠 국가가 손기정에게 선물할 차례다. 그가 민족의 긍지로서 국민에게 잊혀지지 않고 세계화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잠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 자리 잡은 그의 동상을 베를린 메인스타디움에 안착시켜야 한다. 정부와 유관기관이 나서야 할 차례다. 달리는 손기정의 동상은 국가의 출발신호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강형구 손기정 기념재단 이사장·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