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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뜻으로 본 한국역사

입력 | 2006-07-20 03:06:00


《역사는 뜻 없이 끝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에는 허다한 실패가 있다. 실패가 허다하다기보다는 잘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저 실패로 그치는 실패는 아니다. 영원한 실패라는 것은 없다. 몇 번을 잘못하더라도 역사가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기 위하여 늘 다시 힘쓸 의무가 남아 있다. 다시 함이 삶이요, 역사요, 뜻이다. 열 번 넘어지면 넘어지는 순간 열한 번째로 일어나야 하는 책임이 이미 짊어지워진 것이다. -본문 중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지은이가 1932∼1933년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1950년에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그 후 1961년에 펴낸 셋째 판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책 이름이 바뀌었고, 1965년 펴낸 넷째 판에서 내용적으로 지금 우리가 보는 최종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의 이름이 바뀐 것은 기독교적인 역사관에서 출발하였으나 마지막에는 특정 종교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 사유의 지평에 다다른 지은이의 정신적 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의 가치는 우리말로 쓴 최초의 한국통사라는 데 있다. 일제강점기에 겨레의 혼을 살리기 위해 우리말로 우리 역사를 전체로서 기술한 책의 가치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에 그치지 않고, 한국 역사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진정한 가치가 있다. 책 이름이 말해 주듯 함석헌은 이 책에서 한국 역사의 뜻을 물었다. 어쩌면 이 시대에 역사의 뜻을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의 과학적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을 끝으로, 우리 시대의 철학자들은 역사의 뜻에 대해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역사의 뜻이란 종교적 신념이거나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삶에 뜻이 없다고 하는 사람의 삶이 건강할 수 없듯이 자기 역사에서 아무런 뜻을 찾지 못하는 민족에게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에서 뜻을 찾는 것은 한 민족이 존재 이유를 찾는 것과 같다. 물론 그 존재 이유는 객관적 사실로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역사의 해석을 통해 스스로 정립해야 할 것이다. 함석헌에 따르면 한 민족은 자기의 역사에서 뜻을 찾고 그 뜻을 오늘에 이어 나가려 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에서 하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역사의 뜻이란 지나간 일을 비추는 거울이면서 오늘을 이끌어 나가는 이상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민족은 뜻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다. 구차한 생존보다 더 높은 뜻을 품지 못하고 살아온 적도 있다. 그저 살아남는 것, 고작해야 잘 먹고 잘사는 것 외에 다른 이념을 가져 보지 못한 민족이 온전히 나라를 이루고 세계사의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함석헌은 한국 역사의 퇴락을 뜻과 이상의 상실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꿈과 이상을 상실한 필연적 대가라고 봤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꿈과 이상을 좇으며 살고 있는가? 아니 우리가 모두 함께 꾼다고 말할 수 있는 꿈이 있기나 한가? 함석헌은 삼국통일을 그런 꿈 없이 폭력만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분단을 넘어 통일을 이뤄야 할 지금, 우리는 어떤 이상을 가지고 통일된 새 나라를 꿈꿀 수 있을까?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우리를 이런 물음 앞에 마주 서게 한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