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은 이달 5일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이 어느 모임에서 짤막한 연설을 했다. 연설 내용이 알려지자 미국 주가가 폭락했다. 몇 시간 뒤 아시아권의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주가는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세계 주가 속락의 원인으로 버냉키 의장의 연설이 지목됐다. 그가 경기 둔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8일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자 9일 영국의 한 유력 경제지는 1면에 ‘금리에 대한 두려움이 세계 시장을 강타’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등 주요 경제 통화당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고, 이를 우려한 투자 자금이 주식시장을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내용이 세계 언론에 확산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 위험이 언급되기도 했다.
수출이 경기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최근의 상황 전개는 당연히 우려 섞인 질문을 낳는다. 세계 경기는 긴축에 직면했는가? 주식시장의 자금 이탈은 이를 방증하는 현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 경기는 여전히 견실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버냉키 의장의 연설문을 세심하게 살펴보자. 그는 먼저 올해 하반기 성장세 조정이 예상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가 탄탄함을 강조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할 필요성도 말한다. 요컨대 성장 속도 둔화가 예상되지만 경기는 우려할 정도가 아니므로 인플레이션에 정책 대응을 집중해야 한다는 요지이다. 그의 이 같은 진단은 5월 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OECD는 미국 경제가 ‘인상적인 성장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사실 경제의 꾸준한 성장이 금리 인상의 배경이라는 점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지난해부터 경기가 회복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졌다. 이에 지난해 12월과 올 3월 두 차례에 걸쳐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있었다. 최근 3번째 금리 인상을 한 것도 경기 회복이 배경으로 꼽힌다.
경기가 확장 국면을 이어가면 물가 상승 압력이 점증하고 이에 대해 통화 당국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 같은 정상적인 경기 진행과 정책 대응의 관계를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대한 반향이 왜 이리 요란한 것일까?
취임 4개월에 불과한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시장의 신뢰 부족’이 원인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이미 16차례에 걸쳐 정책 금리를 연 5%로 인상한 바 있다. 금리가 이미 꽤 높은 수준이므로 이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의 득실이 어떠한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높은 때이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두 달간 경솔한 언행으로 금리 인상에 대한 의견을 번복한 바 있다. 이에 미국 시장에는 그의 판단력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5일 발언으로 그가 경기를 오독하고 금리를 과도하게 인상할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월가에는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결국 통화 당국에 대한 신뢰 부족과 그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이 최근 주식시장 요동과 불안감 증폭의 원인으로 해석된다.
사건의 결말은 무엇일까? 버냉키 의장의 대화술이 아직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경지에는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버냉키 의장의 시련과 주식시장의 변동성 증대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의 통화정책 기술이 의장 1인의 교체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책 당국의 미숙 때문에 세계 실물 경기의 견실한 흐름이 상처 입을 위험성은 작다고 기대하는 이유이다.
신인석 KDI 경제전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