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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경기지사 “정계개편은 세몰이 구태”

입력 | 2006-06-07 03:00:00

김경제 기자


▶[‘5·31이후 정국’ 릴레이 인터뷰]① 서울시장 이명박

▶ [‘5·31 이후 정국’ 릴레이 인터뷰]②고건 前국무총리

《이달 말 퇴임을 앞둔 손학규 경기지사는 임기 동안 경기도에 외국 기업 107개(누적 투자액수 137억 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손 지사는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손 지사 측은 ‘저평가 실적 우량주’라고 말한다. 본보는 6일 손 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대권 구상과 퇴임 후 행보, 노무현 정부의 대북, 경제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경기도서울사무소에서 오찬을 겸해 3시간 20분가량 진행됐다. 인터뷰에는 본보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이진녕 정치부장, 김상영 경제부장, 최영묵 사회부장, 김차수 문화부장이 참여했다.》

―손 지사를 ‘실적 우량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론 지지도는 낮다.

“누가 그런 얘기하던데,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의 송곳)라고…. 언젠가는 삐져나오겠지(웃음). 지금 우량주면 언젠가 때가 되면 평가받을 것 아닌가. 지금은 일종의 인기투표인데, 진짜 이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절실함 없이 먼발치에서 대학가요제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국민이 본격적으로 대선에서 우리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할 때와 한나라당에서 누구를 내보내야 이길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스스로를 우량주라고 보나.

“경기지사로서의 업적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이다. 나는 내 삶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철들고 나서 끊임없이 시대정신과 씨름하고 역사와 싸우면서 살아왔다. 우리 국민이 간단치 않다. ‘우리도 왼쪽 경험을 좀 하자’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런데 개혁 좀 하라고 했더니 선무당 푸닥거리만 해서 혼란과 절망에 빠지게 하는 무책임과 무능의 극치를 보여 줬다. 이건 개혁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호흡을 같이하는 그런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다.”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나.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의 시대정신은 ‘잘살아 보세’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민주주의의 새벽을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 노 대통령은 ‘새로운 정치’를 표방했는데 여기서부터 국민이 방황했다. 21세기는 ‘신문명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 경제가 바뀌었다. 그런데 그걸 뒷받침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조성되지 않았다. 아직도 정치에서 세몰이 정치, 패거리 정치를 하고…. 그것은 분명 아날로그 정치이며 바뀌어야 한다.”

―내년 한나라당의 대권 경선에서 끝까지 갈 생각인가.

“현재의 정치인들, 대권 주자들과 경쟁한다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다. 나는 시대정신과 역사와 씨름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민과의 대화이다. 때에 따라 포장도 보여 주는 게 필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내가 가진 생각을 풀어 나갈지 고민인데, 내용은 이미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형상화해서 보여 줄지가 문제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나에겐 와닿지 않는다. 사람을 상대로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 한나라당의 경선 규정이 시대정신을 가진 후보를 뽑기에 적합하다고 보나.

“요즘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놓고 논란이 있다고 언론에 나오는데 솔직히 큰 관심이 없다. 빨리 뽑으면 정을 맞는다는데, 아니 정 맞을 사람을 왜 뽑나. 그런 전제에서 조절하고 발상하는 자체가 잘못됐다. 규정 변경? 때가 되면 그때 가서 말이 안 된다면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한나라당이 운영하고 경영해야 할 나라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당을 혁신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뭐했나.”

―언제쯤 (시대정신의) 구상이 드러날지….

“기술 발전, 첨단산업 경쟁 강화, 공교육을 활성화하면서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문화 확충 등에 대해 기본적인 틀은 갖고 있다. 그걸 어떻게 묶어서 내놓느냐인데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은 뒤 내놓겠다. 그런 일을 책상머리에서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민심 대장정’을 통해 만들어 갈 것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21세기 권력은 여의도 정치가 아닌 민심, 국민의 바다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겠다.”

―내년 경선에서 지면 무소속으로 나올 것인가.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권에 들어온 후 손학규의 행보를 봐라.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 하나하나를 보고 나를 봐라. 그렇게 한나라당에서 핍박당해도 꼼짝도 안 했다. 한나라당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켜서 그 실력을 국정에 적극 활용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지금의 한나라당이 국정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고 보나.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유산과 능력, 이런 것을 혁신해서 21세기 신문명의 시대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틀을 바꾸고 체질을 바꿔 결국 국가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분명히 해달라. 경선에서 지면 어떻게 할거냐.

“나에게 그런 얘기 좀 하지 마라. 대표적인 보수 포럼에서 누가 그런말을 묻기에 예의가 아니지만 소리치면서 ‘그런 얘기를 왜 나에게 하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라’고 했다. 나의 현재 지지율은 허깨비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갖고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존의 정당 구조가 앞으로 진보, 보수로 재편돼야 한다고 보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보수와 진보의 선을 긋는 시대에서 넘어가고 있다. 그게 21세기 신문명의 특징이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것이다. 지역적, 이념적인 색깔의 혼재로 땅따먹기를 하는 게 지금의 정치다. 그 세를 불리는 것이 세몰이 정치이고….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에서 망한 게 계속 세몰이, 패거리 정치를 하면 먹힐 줄 알았는데 안 먹힌 것이지. 양극화를 말하고 판짜기 했는데 안 먹힌 거다. 그래도 또 세몰이 하려고 하겠지…. 정계개편이 그런 것이다. 그럼 한나라당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가 문제인데 이념 스펙트럼이 좌에서 우까지 있는데 그걸 다 아우르고 같이 가야 한다. 중간에서 곡예를 하는 중도가 아니고 같이 가는 것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하고 경쟁 상대인가 뭐…. 굳이 고 전 총리를 겨냥해서 중도를 비판한 것은 아니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마디로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은 허수라고 본다.”

―고 전 총리의 중도보수 통합이 먹힐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과연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인 25%가 중도 통합의 25%라고 보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정부가 하도 개판을 치니까 그런 거지….”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은 어떻게 보나.

“그분들은 높은 지지와 관심을 받을 만한 분들이니까…. 탄핵 후 한나라당의 상황을 생각해 보고 지금 상황을 보라. 누가 말해도 박 대표의 공이 절대적이고 그런 리더십으로 한나라당을 이끌어 왔다. 이 시장은 행정을 통해 확실한 희망을 보여 줬다. 훌륭한 한나라당의 자산이다. 더구나 박 대표는 몸으로 당을 완승으로 이끈 공이 있고….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그런 신뢰를 주고 능력에 대한 기대를 줄 수 있었으니 선거에서 이긴 것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의 당권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하면 당권 구도라든지, 이런 것들이 지금 나에게 절실히 다가오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당권 경쟁이 대리전이 되면서 반복되면 지방선거에서 이긴 게 독이 되는 것이다. 이 선거 결과를 갖고 우리가 세몰이를 하면 ‘쓰나미(지진해일)’를 맞을 것이다. 21세기에 새 문명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한나라당을 만들고 한나라당이 나라를 책임질 수 있게 하는 데 온몸을 던지겠다.”

―개헌 논의에 대한 생각은….

“심심하면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데 흔히 정계 개편하고 함께 나오는 것 같다. 또 정권 창출과 연계되고…. 헌법이 잘못돼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가나. 몇 가지 기술적인 것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권, 정계개편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해야 한다.”

―며칠 전 북한을 다녀온 이유는….

“모내기하러 갔다. 경기도에서 작년부터 (북한과) 벼농사 협력 사업을 하는데, 그 취지는 고기를 잡아서 요리해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자는 것이다. 이번에 모를 심고 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 간 신뢰를 심고 왔고 새로운 개혁과 개방의 씨앗을 심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대북 기본 노선과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

“내가 하는 것도 한나라당의 대북 방침 가운데 하나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다양성과 유연성인데, 상호주의 원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동조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방침을 변할 수 없는 독트린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방식은 투자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늦지 않나.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 지도층의 변화를 무엇으로 가져올 수 있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는 밑에서부터 흐름이 쭉 만들어질 때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것이지 누가 ‘바꿔’라고 말해서 권력을 내놓는 것 봤나. 밀려서 어쩔 수 없을 때, (안 하면) 내 목에 칼이 들어올 때 바뀌는 것이지.”

―정치를 배제한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나.

“물론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단기적 술수로 이용하느냐,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 화해협력을 길게 보고 포석을 놓자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민의 합의를 적극 얻어야 하고 당국 간 관계에서 국제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미 관계는 남북 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인프라다. 인프라를 튼튼히 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신뢰가 약해지면 북한이 한국을 믿지 않게 된다. 힘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나라 최고 경제정의는 일자리 창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보나.

“이 정부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정책을 가졌으면 좋겠다. 시장을 믿고 맡겨야 한다. 그걸 통해 기업이 자기 활로를 찾고 살길을 찾도록 해 줘야 한다. 경제 활동의 예측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게 첫 번째다. 그것은 수도권 규제 완화로 나와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한데 수도권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꽉 묶어놓으니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를 풀어 주면 다른 지방은 어떻게 하나.

“무작정 풀어 주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대폭 재검토는 해야 한다. 지방의 반발은 합리적인 지원책을 만들어서 설득해야 한다. 이 정부 들어서서 균형발전 정책을 쓰고 수도권에 사실상 규제를 강화했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커졌다. 경제에서 풍선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여기를 누른다고 저기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해외 투자가 잘 안 들어온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면서 외국 투자가 들어오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이 기업 천국이라야 한다. 기업을 존중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크게는 시장경제, 시장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다는 걸 심어 줘야 한다.”

―정 회장에 대한 생각은 시각에 따라서는 국민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이 좋아하는 대로 따라가면 지도자가 아니다. 설사 국민 감정이 그렇다고 해도 그걸 설득해야 한다. 지금 이 나라 최고의 경제 정의는 일자리 창출이다. 국민 감정이 그렇다면 대통령이 나서서 설득해야 하고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불러 관여했어야지,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자랑이냐. 재판은 불구속으로 하는 게 원칙 아니냐. 그게 간섭이냐,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보나.

“우선 기본적으로 시장의 원리를 중시하고 겸손한 정책을 해야 한다.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은 아날로그적이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수준의 집을 원하는 만큼 만들어 줘야 한다. 집만 아니라 학교 인프라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

―경기 파주시 LCD공장 준공 때 노무현 대통령이 ‘손 지사 그렇게 떼쓰시더니…’라고 했는데 중앙 정부에 대해 할 말이 있나.

“지사 직을 마감하면서 각을 세우는 것보다 협력이 강조돼야 한다는 마음이다. 중앙이 지방을 끌어안고, 설득하고, 의견을 들어 주고, 지방자치단체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고…. 그러면 왜 대들고 각을 세우겠나. 정치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나.

“교육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평준화를 통해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주고 대신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 자본이 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그런다고 불평등이 심해지지는 않는다. 이 정부의 교육 정책은 한마디로 한심한 거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수, 진보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학계에서 떠드는 건 괜찮다. 그런데 정부가 주동이 돼 정치화하는 것은 문제다. 패거리, 세몰이 정치가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언제 이야기냐. 벌써 20∼30년 전 화두고 우리나라만 해도 벌써 10년 전에 끝났어야 할 문제를 아직도 잡고 있다는 게 한심한 거다. 과거를 붙잡고 싸우면 좌절과 패망밖에 없다.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

▶[‘5·31이후 정국’ 릴레이 인터뷰]① 서울시장 이명박

▶ [‘5·31 이후 정국’ 릴레이 인터뷰]②고건 前국무총리

정리=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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