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수지 서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재즈바 ‘원스 인 어 블루문’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이번 공연에서 노래할 자작곡 ‘라이트 온 마이 숄더’를 직접 기타를 치며 취재진에 들려줬다. 전영한 기자
《‘나는 한국인일까, 미국인일까.’
미국 동부 뉴햄프셔 주의 사립 기숙학교를 다니던 열세 살 소녀 수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수지의 부모는 196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정착했다. 여느 이민 1세대처럼 자식의 성공을 바랐던 부모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해 번 돈으로 외동딸 수지를 주류 백인사회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로 유학 보냈다. 그러나 수지는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에게 배운 한국말 중 “안녕하세요” 한마디 나눌 한국인 친구가 없는 기숙학교. 그때,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어온 친구가 있었다. 집 떠나는 그에게 오빠가 건네준 낡은 어쿠스틱 기타였다. 이 기타는 결국 그의 삶을 바꿔 미국 유명 음반사에서 음반을 낸 가수 수지 서(25)로 만들었다. “기타는 외로울 땐 외로움을 노래하게 해주고, 때로는 ‘명상을 해봐’라고 말을 걸어왔어요. 제 주위의 친구들은 전자 기타를 갖고 징징거렸지만 전 제 기타와 영적인 교감을 나눴죠.”》
곡명: Your Battlefield
기타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 뒤 그는 달라졌다.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교내 아카펠라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뉴욕대(NYU)에 진학한 뒤 그에게는 자신이 가야할 길이 분명히 보였다. “뮤지션이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는 불 같았다.
“엄마 아빠는 제가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을 갖길 원하셨어요. 그렇게 음악이 좋으면 차라리 줄리아드 음악원에 가서 클래식을 하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건 부모님들의 대리만족일 뿐이었죠. 전 그럴 때마다 제 심정을 담아 작곡을 했어요.”
스무 살의 수지는 부모와 전쟁 같은 격론을 벌인 뒤 ‘유어 배틀필드(Your battlefield)’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듣자고 청하는 사람이 없어도 카페와 클럽, 때로는 지하철역에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유명 레코드 회사를 찾아가 음반을 내 달라며 즉석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하는 동양 여자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칭찬보다는 ‘풋내기’라는 비웃음이었다. 그럴수록 수지는 마이크를 없애고 육성으로 노래했다. 노래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지 서, 그녀 자신과 그녀의 음악에 관하여
(영상을 보시려면 ▶플레이 버튼을 눌러주세요
동영상이 로딩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불안감과 차별 속에서 오로지 기타에 의지해 노래한 지 4년. 음반 프로듀서 출신으로 EMI의 회장을 지낸 거물 찰스 코플먼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신의 목소리가 좋아. 음반을 만들고 싶소.”
세계적인 여성 로커 앨라니스 모리셋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글렌 발라드가 프로듀서를 맡겠다고 나섰다.
마침내 그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데뷔 앨범이 2005년 4월 소니 계열의 에픽레코드에서 나왔다. 앨범 제목은 바로 그 자신 ‘수지 서(Susie Suh)’. 뉴욕타임스는 이 동양계 신인가수를 “풍부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멜로디로 사랑에의 갈구를 가장 설득력 있게 노래한다”고 극찬했다.
한국말이 서툰 수지 서가 22일 한국 땅을 밟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자매 피아노 트리오인 ‘안 트리오’와 경기 성남아트센터(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6월 8일) 등에서 4차례 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수지 서는 자신의 앨범 수록곡 ‘라이트 온 마이 솔더’를, 안 트리오의 클래식 연주에 맞춰 ‘올 아이 원트’ 등을 부를 예정이다.
뉴욕타임스에 호평이 실렸을 때도 딸의 실력을 믿지 않던 부모는 “한국 언론에서도 나를 인터뷰한다”고 하니 비로소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우상인 빌리 홀리데이만큼 깊고 허스키하며 음률은 관조적이다. 댄스음악이나 발라드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데뷔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그는 “성공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할 뿐”이라고 답했다.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빙긋 웃는 그. 수지 서, 아니 심지 굳은 한국인 여가수 서수지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