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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한기흥]붉은색의 환희와 슬픔

입력 | 2006-05-15 03:00:00


다음 달 9일 독일 월드컵 대회의 개막을 앞두고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거리엔 월드컵 4강 신화의 재현을 기원하는 붉은 티셔츠 차림이 크게 늘었고, ‘붉은 악마’ 등의 힘찬 응원가와 구호도 일상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4년 전처럼 온 국민이 붉은 함성으로 다시 하나가 될 신명나는 축제가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벅찬 기대와 환희로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붉은색이건만 건우(4)와 태현(3) 형제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아빠인 김도현 공군소령이 열흘 전 어린이날 축하 에어쇼 도중 불의의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에어쇼가 끝나면 외식을 하자던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날은 마침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유아원에 다니는 건우는 어버이날인 8일 치러진 영결식에서 아빠의 영정 앞에 붉은 카네이션과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연꽃반 김건우’라고 쓴 그림 카드를 바쳤다. 서투른 글씨에, ‘빨간 마후라’였던 아빠의 얼굴을 붉은 색연필로 빨갛게 칠한 카드였다. 건우는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 “필승”하며 경례하는 것으로 아빠와 영원히 작별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는 “아빠가 언제 오느냐”며 찾았다고 한다.

해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건우와 태현이에겐 아빠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붉은 카네이션을 볼 때마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른 아빠의 모습과 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면 아빠가 계신 창공을 바라보며 슬픔을 이겨낼 것이다.

건우 아빠는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기체가 에어쇼를 관람하던 어린이와 부모들 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조종사들은 비행 중 사고가 발생해도 기체가 민간인 지역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군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에서 숨진 윤영하 소령 등 해군 장병 6명도 국민을 위해 꽃다운 젊음을 바쳤다. 당시 윤 소령이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해 해군의 염원을 담아 ‘한국팀 파이팅’을 외치던 모습을 우연히 본 기억이 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그들의 단심(丹心)이 지금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금 이 나라에선 그들처럼 묵묵히 국방 의무를 다하는 군 장병들이 민간인들에게 얻어맞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현장이 바로 그 무대다. 시위대들은 장병들이 마치 주적(主敵)이라도 되는 양 죽봉(竹棒)까지 휘두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이 불법적 자유조차도 군의 헌신적인 국가방위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과 평택에선 반미(反美)의 낡은 이념으로 채색된 그들의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건우와 태현이는 곧 슬픔을 이겨내고 친구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힘껏 외칠 것이다. 아빠가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던 나라다. 얘들아, 씩씩하게 ‘오∼필승 코리아∼’를 노래하렴. 하늘나라의 아빠가 들을 수 있게. 그리고 아빠처럼 늠름한 보라매가 되겠다는 꿈을 꼭 이루려무나. 너희들이 살아갈 이 나라엔 아빠와 같은 군인들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단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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