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오른쪽에, 러시아와 중국이 왼쪽에 서 있다면 그 중간에서 영국과 독일은 각각 오른쪽과 왼쪽을 바라보고 있고 프랑스는 앞을 보고 있는 형국이다.”
테헤란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4일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주요 국가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강력한 제재와 외교적 해결을 내세워 대립하는 와중에 영국은 미국 편에, 독일은 러시아 중국 편에 가깝고 프랑스가 중립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국 간의 ‘힘겨루기 외교(muscle diplomacy)’가 계속되고 있어 사태의 진전에 따라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외교적 수사(修辭)에 가려진 각국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미지수다.
‘태풍의 눈’ 한복판에 있는 각국 대사관은 이란 정부의 입장과 속내 못지않게 다른 주요 국가의 노선을 파악하느라 피 말리는 정보전을 벌이고 있다. 군사적 공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앞두고 자국민 소개 계획에 이르기까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서방 대사관 관계자는 “이란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눠 위성전화를 통한 비상연락망을 갖추고 있으며 요즘 관련 점검회의를 여러 차례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국 외교관들은 나름의 공식 비공식 정보망을 총동원해 미세한 변화라도 잡아내려 애를 쓰고 있다. 이란은 폐쇄적이며 안팎의 감시가 철저한 국가. 무엇보다 이란 정보기관의 감시망을 피하는 것도 만만찮은 문제다. 한 외교관은 “우리 전화기는 모두 도청되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체크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서방의 한 외교관’이라고만 해 달라는 테헤란 주재 한 유럽 대사관 관계자는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누구도 오늘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고 이란도 이렇게까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할 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유럽 3국의 역할에 대해 “외교적 해결의 창이 좁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한 유럽의 중재자 역할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나름대로의 외교전을 펼쳐 나가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날 이슬람 10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경제협력기구(ECO) 포럼 참석을 위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로 떠났다. ECO는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국가들과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터키 등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들의 지역 경제협력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특히 접경 지역 국가들을 상대로 만일에 대비한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승미(58) 한국 교민회장은 “이란에 교민 4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 테헤란 근처에 살고 있고 미군의 공격 대상이 될지 모르는 핵시설 근처엔 교민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교민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격할테면 해봐” 이란 뭘 믿고…▼
“만약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전 세계에 걸쳐 두 배의 보복을 당할 것이다.”
이란 지도자들은 요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이 같은 장담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엔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며 새로 개발한 무기들을 대거 선보이기까지 했다.
과연 이란의 군사력 수준은 얼마나 될까. 테헤란 주재 한 서방국의 국방무관은 “이란의 군사력이 중동지역에선 최대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육해공군에 걸쳐 골고루 갖춘 데다 게릴라전 수행능력 등 이른바 ‘비대칭 잠재력’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40만 병력의 육군은 정규군(알티쉬)과 혁명수비대(세파르)로 이원화돼 있다. 이란군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이중적 지휘구조 탓에 지휘계통의 구분이 모호하고 갈등도 빈번하다는 것. 하지만 이동식 지대공미사일(P-SAM) 등이 매우 발달돼 있다.
또 다른 지상병력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민병대(바시즈)다. 이슬람혁명 과정에서 각 지역의 모스크를 중심으로 생겨난 바시즈는 훈련이나 무장 상태는 빈약하지만 고도로 정치화돼 있어 전쟁이 발발하면 자살특공대가 될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이다.
다만 육군의 병참지원 능력은 의심받고 있다. 사단 이상 조직에선 군수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1개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해군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해상지배권을 행사할 능력이 충분한 군대로 평가되고 있으며 3월 말 대규모 훈련 이래 훈련 횟수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이란군의 최대 취약점은 공군. 군수지원 능력이 부족하고 최근 추락사고도 많이 나는 등 불과 며칠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러시아와 ‘토르-M’ 미사일 구매협상을 벌이는 등 급히 전력을 갖추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테헤란=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