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쇼인 ‘CES 2006’를 찾은 관람객들이 삼성전자가 내놓은 8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를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 삼성전자
《세계 전자 업계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은 상당히 높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디지털 가전 분야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6·25전쟁 이후 외국 기업들의 하도급 업체로 출발한 한국 기업들이 30∼40년 만에 시장의 표준과 트렌드를 주도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것. 이는 혁신적인 신기술과 새로운 디자인 개발, 지속적인 연구개발(R&D) 및 시설 투자가 어우러져 가능했다.》
○ 적절하고 과감한 투자가 성공 비결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불과 20년 만인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올라 지금까지 선두를 지키고 있다.
1992년 64메가비트(Mb) D램을 시작으로 256Mb, 512Mb를 비롯해 1기가비트(Gb), 2Gb D램까지 모두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의 경우 1999년 256Mb를 시작으로 매년 용량을 2배씩 키워 지난해 16Gb 제품까지 세계 최초 개발에 성공했다. 16Gb 플래시로 만든 메모리 카드는 DVD급 화질의 영화 20편(32시간)이나 MP3 음악파일 8000곡(670시간)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 낸드 플래시 부문에서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 신화’는 세계 최초 8인치 라인(1992년)과 12인치 라인(2001년) 투자 등 적절한 시점의 과감한 투자가 있어 가능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규모는 △2002년 2조1900억 원 △2003년 3조9700억 원 △2004년 5조5000억 원 △2005년 6조100억 원으로 매년 커졌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매년 4조500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들이 액정표시장치(LCD)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외국 경쟁업체들이 망설일 때 과감한 설비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세계 LCD 패널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1, 2위를 달리고 있다. 지금은 40인치 이상 생산라인에 적극 투자하며 대형 패널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세계 PDP 시장 점유율도 삼성SDI(30%), LG전자(26%), 일본 마쓰시타전기(25%) 순으로 한국 기업이 1, 2위였다.
LG전자 에어컨 휘센의 신제품 ‘오리엔탈 골드’. 사진제공 LG전자○ 프리미엄 전략으로 세계 시장 점령
LG전자는 2000년대부터 에어컨과 냉장고, 세탁기 등 디지털 가전제품에 ‘프리미엄 전략’을 펼쳐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매년 20% 이상 매출이 늘면서 2004년 매출 85억 달러(약 8조5000억 원)로 세계 가전시장 3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3위를 유지했다.
이는 포화상태에 이른 가전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판매에 집중해 수익성을 높이는 ‘프리미엄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 LG전자는 에어컨 부문에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전자레인지와 청소기 부문도 1위다.
혁신적인 제조 원가 절감도 일류 기업 도약의 밑거름이 됐다.
○ 끊임없는 기술 개발, 투자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시 반도체 단지에 8개의 생산 라인을 새로 짓고 8Gb 이상 대용량 플래시 메모리 등 차세대 첨단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한국판 ‘실리콘 밸리’를 만들겠다는 것.
5월 가동 예정인 R&D 전용 라인은 32Gb, 64Gb 플래시 메모리 개발과 반도체 회로선의 폭을 40나노 및 30나노급으로 줄이는 첨단 기술 연구를 맡게 된다. 1nm(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LG필립스LCD도 2004년 3월 착공한 경기 파주시의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에 미래를 걸었다. 여기에는 7세대 LCD 공장과 부품 및 장비 협력업체가 들어선다. 산학협력 기능을 강화한 대규모 R&D 단지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의 올해 목표는 에어컨 부문 7년 연속 세계 1위, 냉장고 세탁기 부문 세계 2위를 달성하는 것. 이를 위해 세계 1등 제품과 1위 지역을 확대하고 폴란드 브로츠와프 가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것을 비롯해 세계 11개 지역에 생산기지를 두고 글로벌 생산체제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삼성전자 최지성 사장…스피드 경영으로 미래시장 선점▼
“앞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피드’가 가장 중요합니다.”
최지성(사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은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시장 변화를 한발 앞서 파악하고 먼저 움직여 시장을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가전제품 시장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던 2000년경 삼성전자가 내놓은 디지털 컨버전스(융합) 제품을 성공 사례로 들었다.
아날로그 제품인 VCR와 디지털 제품인 DVD를 하나로 합친 삼성전자의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단일 제품으로 두 자릿수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 그는 이 제품이 디지털 컨버전스 흐름의 신호탄이었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가 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비결로 △경영철학 △혁신 △디지털 기술을 들었다. 적극적인 R&D 투자와 인재 중시 경영도 한몫했다고 했다.
여기에 프로세스(Process), 인사(Personnel), 제품(Product) 혁신(Innovation) 등 ‘3P 혁신’이 회사의 사업구조와 기업 문화 체질을 바꿨다고 말했다. 또 최 사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국내외 우수 인재 확보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LG전자 이영하 사장…프리미엄-고객만족 마케팅 강화▼
“세계 곳곳에 가전제품 생산 공장을 두고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큰 이익을 주는 전략이 LG전자의 미래 비전입니다.”
이영하(사진) LG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 사장은 “경남 창원 가전공장은 프리미엄 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글로벌 R&D 센터’로 키우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시장인 브릭스(BRICs) 지역의 매출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LG전자 가전부문이 2000년 이후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에 따른 제품 경쟁력 향상과 세계화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가전시장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잠재욕구를 끌어내 제품에 반영함으로써 고객을 끌어당겨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며 “새로운 성장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프리미엄 제품 마케팅을 더욱 강화 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LG전자가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경쟁업체의 견제’를 꼽으면서 프리미엄과 고객만족 전략으로 이를 이겨내겠다고 했다.
특히 무작정 가격만 낮추는 경쟁을 피하고 경쟁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블루오션’ 시장을 찾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필립스 박기선 사장…글로벌 생산체제로 경쟁력 확보▼
박기선(사진) LG필립스LCD 사장은 “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원천’은 과감한 적기 투자와 지속적인 R&D, 우수 인재 확보였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어 “급변하는 LCD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해 그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며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 파주시 디스플레이 클러스터가 LG필립스LCD의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교두보라고 설명했다. 재료나 장비에서부터 LCD 패널, 최종 세트까지 한곳에서 종합적으로 만들게 되면 커다란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파주 클러스터는 LG필립스LCD 단지와 협력업체 입주 단지, LG전자 계열사 입주 단지를 합쳐 140만 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디스플레이 단지다. 중국 난징(南京)과 폴란드 브로츠와프 지역에 LCD 부품 조립 공장을 만든 것은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기 위한 전략이라고 박 사장은 설명했다.
박 사장은 “초일류 기업은 미래 환경 변화를 정확히 예측해 사업 방향을 정한다”며 “기업 내외부의 환경 변화를 분석한 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량을 모아야 미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