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는 16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다. 도시는 해발 20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한겨울인 요즘 산은 물론이고 온 도시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순백(純白)의 도시.’ 2주 전쯤인 지난해 말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를 만나러 인스브루크에 도착했을 때 도시에서 받은 첫인상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는 ‘순백’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강하게 마음에 닿았다.
주민들은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밝은 얼굴로 “그뤼스 고트”라는 인사를 건네 왔다. ‘신의 은총을 기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가톨릭 전통이 매우 강한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과거 로마 가톨릭이 서북유럽으로 진출할 때는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았다. 지금도 이 작은 도시에 수도원과 수녀원이 여러 군데 있고 성당은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돕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40년 넘게 소록도에서 봉사한 두 수녀가 조용히 소록도를 빠져나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렵사리 만난 마리안 수녀의 첫마디는 “우리가 한 게 뭐 있다고 여기까지 만나러 왔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온 한국 손님을 내치지는 않았다. 마리안 수녀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소록도 생활을 나직하게 들려줬다.
어떤 과장도, 자랑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봉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와 아쉽고 미안하다는 표정만 내비쳤다. 대신 지금 사는 마을의 양로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두 수녀의 깨끗한 마음이 담긴 사연을 듣고 있자니 눈길을 헤치고 오느라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마리안 수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순백’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두 수녀의 한글 이름도 참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리안 수녀는 고지순, 마가레트 수녀는 백수선이라는 한글 이름을 갖고 있다.
두 수녀는 돌아갔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천사’가 되어 두 수녀의 빈자리를 메우는 한 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대해 본다.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