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지난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뒤엎는 것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이미 병역자원의 감소와 안보 상황 등을 이유로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밝혔으며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상당수 국민이 병역거부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인권위의 결정이 나자마자 대부분의 누리꾼은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통해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가족, 일부 시민단체는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치”라고 옹호했다.
인권위는 26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에 포함되며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안에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현재의 제도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와 그로 인한 형사처벌’과 ‘단순한 병역의무의 이행’ 간 양자택일밖에 없지만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우선할 수 없다”며 입영을 거부한 최모(23) 씨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같은 해 8월 헌법재판소도 “기본권의 행사는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 합법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인권위의 결정은 열린우리당 임종인(林鍾仁) 의원과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이 각각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 처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이들 법안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 따르면 이달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는 1186명이다.
세계적으로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국가는 유럽 23개국을 포함해 31개국이며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48개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