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사진) 미국 국무장관은 5일 유럽 순방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앙정보국(CIA)이 유럽에서 운영해 왔다는 비밀 수용소의 존재 여부에 대해 침묵하면서도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 다른 국가로 테러 혐의자를 옮겨 신문(訊問)할 필요성이 생겼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는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보도 이후 유럽에서 제기된 의혹을 묵인하면서 이를 공세적으로 돌파하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은 5일 일정으로 독일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라이스 장관은 CIA가 제공한 정보가 미국인뿐 아니라 유럽인의 생명도 구해 왔다며 “어떤 나라가 테러 예방을 위해 미국과 협력할지, 그 나라가 미국과의 협력에 대해 어디까지 공개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 나라의 권한”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CIA 비밀 수용소가 있는 나라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은 “범죄인 인도방식 중 전통적인 엑스트러디션(extradition)이 적절하지 않을 때 국제법하에서 광범위한 렌디션(rendition)이 허용될 수 있다”며 그 전례로 프랑스가 1994년 수단에서 체포된 카를로스 자칼을 신문하기 위해 렌디션을 적용했으며 당시 유럽 인권위원회는 이를 합법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CIA는 렌디션 관행을 통해 고문이 합법화된 나라로 테러 혐의자를 옮겨 신문함으로써 고문을 금지하는 미국 헌법과 법률을 교묘하게 피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정부의 주된 목적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인데 본질적으로 국적 불명의 테러 혐의자는 기존의 군사 및 사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며 “미국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왔고 이제 다른 나라도 동일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