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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5-11-26 03:01:00

그림 박순철


제왕 전광(田廣)이 죽자 그때껏 버티던 성양(城陽)성 안의 군민들도 더는 싸우려 들지 않았다. 임시 재상 전광(田光)이 다시 제나라 군사 수천 명을 이끌고 동문으로 빠져나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병장기를 내려놓고 땅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기까지 따라왔던 초나라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만여 명이 모두 한군에게 항복하니 이로써 패왕 항우가 용저에게 갈라 보낸 5만 별대(別隊)는 한 사람도 본진(本陣)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패왕이 한왕에게 발목이 잡혀 광무산에서 머뭇거리는 그 한 달 동안에 오른팔 같은 맹장 하나와 절반 가까운 병력이 제나라 땅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한신은 제왕 전광이 죽고 성양이 떨어진 뒤에야 다시 군사를 나누어 제나라의 남은 세력을 쓸어 버리게 했다.

“전광(田光)은 아마도 전횡이 있는 박양(博陽)이나 영하(영下) 쪽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기장 관영은 낭중(郎中) 기병과 군사 2만을 데리고 전광을 뒤쫓으라. 서둘러 뒤쫓으면 전횡에게 이르기 전에 전광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전광을 사로잡은 그 기세로 내쳐 전횡까지 사로잡아야 한다.”

한신은 먼저 관영을 불러 그렇게 군령을 내린 다음 다시 조참을 불러 명했다.

“우승상은 다시 3만 군사를 이끌고 먼저 임치로 가서 부근을 어지럽히는 제나라 장수 허장(許章)을 잡으라. 그자도 전광처럼 제나라 상국(相國)을 자처하며 임치를 되찾겠다고 큰소리 치고 다닌다고 한다. 그자부터 잡아 죽인 다음 군사를 교동(膠東)으로 몰아가 즉묵(卽墨)에 진을 치고 있는 전기(田旣)를 때려죽이면 나머지 제나라 70여 성은 모두 절로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에 관영은 다음날로 성양을 떠나 전광을 뒤쫓았다. 한신의 헤아림대로 전광은 전횡을 찾아 영하로 달아나고 있었다. 기마대를 앞세워 지름길로 영하로 가는 길목을 막게 한 관영은 박양 못 미치는 곳에서 전광을 사로잡고 박양성 밖 벌판에 진채를 내렸다.

“여기서 며칠 인마를 정비한 뒤 영하로 내려간다. 그동안 너희들은 전횡이 영하 어디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군세는 얼마나 부풀었는지부터 먼저 알아 오라.”

관영이 영하 쪽으로 탐마(探馬)를 풀면서 그렇게 명을 내렸다.

한편 영하의 전횡도 곳곳에 사람을 풀어 제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용저가 대군을 이끌고 고밀에 이르러 제왕과 합세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제나라를 되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신도 크게 관영에게 반격을 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관영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밀로 갔구나. 용저가 뜻밖의 대군을 몰고 오자 한신이 병력을 고밀로 집중하는구나.’

그런 짐작이 들자 전횡은 고밀로 가서 제나라와 초나라 연합군에 합세하는 길과 비어 있는 임치를 되찾아 도성부터 회복하는 길 중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갑자기 망설여졌다. 하룻밤을 오락가락하다가 마침내 임치로 가는 쪽을 고르고 군사들에게 떠날 채비를 시켰다. 허풍이 섞인 말이라 해도 용저가 이끌고 온 대군이 20만이라면, 자신까지 가서 군사를 보태는 게 아무래도 지나친 중복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전횡이 막 군사를 움직이려는데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왔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