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 마틴 루서 킹 등이 세계적인 연설가로 평가 받는 이유는 무얼까. 문화가 다른 곳의 대중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대중 연설은 물론 각종 발표에서 청중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으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8년째다. 학생들이 글로벌 문화에 친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외국인 앞에서 영어로 발표할 때 아직도 어색해 하고 움츠러드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영어에 자신 없어 한다. 하지만 정작 연설에서의 문제는 언어 능력보다는 문화적 장벽을 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국인들은 영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발표 자료를 또박또박 읽는 데 치중하는 반면 청중의 반응을 끌어내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연설 내용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청중이 내용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며 ‘충분한 준비 없이 발표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발표자가 청중 속으로 들어가거나 청중을 참여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는 한국인 청중의 수동적인 태도와도 연관돼 있다. 한국에서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나이가 많거나 학력이 높거나 권위자라고 알려진 연설자의 발표 중에 청중이 반론이나 질문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질문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면 연사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서양과는 대조적이다.
또 한국인 발표자들은 가능하면 자신을 낮추려 하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다. 민감한 문제는 직접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청중이 알아서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외국인 청중은 연설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관련 경험은 해 봤는지, 그 연설을 들음으로써 구체적으로 배울 점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외국인 청중은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는 연설자들에게서 완벽한 영어를 기대하지 않는다. 연설자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개인적 경험 소개, 역동적 힘이 느껴지는 말투와 그래픽 등의 시각적 보조장치 사용,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거나 시선을 맞춤으로써 청중과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 좀 더 자신감 있게 보이려는 태도 등이 한국인 연설자들에게 요구되는 점들이다.
○약력
중국계 미국인으로 1967년 태어났다. 샌프란시스코대에서 국제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일리노이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1998년부터 KAIST에서 근무하고 있다. 비교문화 경영 등을 가르친다.
베티 정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