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국제무역 분쟁의 조정자로 나섰다. 최근 국제무역 분쟁이 정부나 기업 간 협상보다는 법원을 통한 중재로 해결되는 사례가 많아 행정법원의 이번 시도에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달 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권순일·權純一)는 인도네시아 제지수출업체 3개사가 자신들이 수출하는 복사용지에 대해 한국 무역위원회가 덤핑 판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덤핑 판정이 이유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은 외국 수출기업이 무역위원회의 덤핑 판정에 대해 국내 법원에 제소한 첫 사례이고 국내 법원이 한국 정부의 구제조치에 사법적 해석을 내린 첫 시도였다.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국내 관세법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의 ‘1994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세부조항을 꼼꼼히 살펴봤다. 나라 밖의 유사한 사례도 찾아 신중히 검토했다. 행정법원의 판결 전 WTO는 무역위원회의 덤핑 판정이 적법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법원 안팎에서는 “수입자유화 조치로 해외 수출기업과 국내 기업 간 무역 분쟁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행정법원이 앞으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기능을 일부 담당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많다.
아직 한국 무역위원회의 구제조치는 대외적으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무역위원회는 산업자원부 소속 행정위원회로 불공정한 무역행위나 산업피해 등을 조사 판정하고 덤핑과세, 수입제한 조치 등 구제조치를 관계기관에 건의하는 데 그친다.
반면 미국 ITC는 준사법적 독립기구로 관세·통상 등에서 독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 ITC는 인력의 절반에 가까운 200여 명이 변호사인데 반해 무역위원회는 법률인력이 변호사 3명에 불과하다.
무역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무역분쟁이 당사자 간 협상보다는 법정에서 해결되는 사례가 많다”며 “무역위원회가 ‘무역검찰’로서의 역할에 그치고 있어 구제조치에 대한 대외신뢰도를 얻기 위해서는 사법적 해석을 더해줄 제3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