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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메르켈총리 시대]‘대연정’ 정책조율 험로 예고

입력 | 2005-10-12 03:08:00

“헤어스타일도 전략” 메르켈의 변신“‘콜의 소녀’에서 ‘신데렐라’로.” 독일 차기 총리로 내정된 앙겔라 메르켈 기민련 당수의 변신을 독일 신문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정계 입문 뒤 줄곧 ‘바가지 머리+정장 투피스’(왼쪽·2001년)를 고집해 ‘촌티를 벗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던 메르켈 당수. 조금씩 변신을 시도하더니(가운데·2005년 1월) 총선 기간 중에는 강인하면서도 세련된 커트 머리와 화려한 옷차림으로 유권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언젠가 코너에 몰아넣고 복수하겠어. 시간이 필요한데 기다릴 수가 없군.”

1997년 당시 독일 기독민주연합(CDU·기민련) 소속 앙겔라 메르켈 환경장관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니더작센 주지사에게서 정책 실패에 대한 매서운 추궁을 받은 뒤 측근들 앞에서 다짐했다.

그로부터 8년. 그는 최초의 여성, 최초의 동독 출신, 최연소 총리로 꿈을 이뤘다. 슈뢰더 총리는 “대연정 내각에 남아 있는 것은 나의 인생 계획과 맞지 않는다”며 10일 용퇴의 뜻을 명백히 했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메르켈 차기 총리는 양보를 모르는 정치가로 알려져 왔다. 선거전에서는 아기를 안고 키스하는 제스처마저 거절했다. 그는 과학자와 2번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어 측근들은 ‘아기 한 번만 안으면 이미지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조언해 왔다.

그런 그가 처음 협상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지율도, 의석수도 비슷한 사회민주당(사민당)으로부터 총리직을 양보받으면서 그가 치른 대가는 컸다. 독일 언론들은 11일 일제히 ‘메르켈 총리 앞에 만만치 않은 험로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각의 16개 장관 자리 중 기민련-기독사회연합(기사련)이 사민당에 양보한 자리는 8개. 이 중에는 부총리 겸 외무장관, 재무장관, 노동장관 등 요직이 즐비하다.

특히 대연정 협상의 최고 쟁점이었던 외무장관을 양보한 것은 그에게 두고두고 짐이 될 전망이다. 외무장관 자리에는 사민당의 오토 실리 현 내무장관이 내정돼 있다.

구동독 시절부터 금기시된 청바지를 입고 팝음악을 즐겼던 메르켈 차기 총리는 “인권이 외교의 최우선”이라며 슈뢰더 총리의 친러 외교를 줄곧 비판해 온 반면 ‘독일의 네오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이라크전쟁을 비롯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국제정책에 지지를 표명해 왔다. 그런 그가 사민당 소속 외무장관과 정책을 조율하게 된 것이다.

경제 살리기 역시 장밋빛은 아니다. 일단 경제장관에는 우당(友黨)인 기사련의 에드문트 슈토이버 당수를 앉히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재무장관을 사민당에 양보함으로써 선거전 내내 핵심정책이었던 세제 개편은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일간 빌트지는 ‘대연정=돈내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민련의 파격적인 39% 감세안이 물 건너갔다고 한탄했다.

“앙겔라는 학창 시절 이미 ‘CDU’라고 불렸지요. 기민련(Christlich-Demokratische Union)이 아니라 키스 받지 못한 사람 클럽(Club der Ungek¨ussten)이란 뜻이었어요.” 학창 시절의 공부벌레 메르켈 차기 총리를 회상하는 친구들은 “그는 싸늘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목표로 삼은 일은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았다”고 회고했다.

정치적 후원자였던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비리 의혹이 드러나자 그를 비판하는 칼럼을 신문에 게재해 정치권과 대중의 스타로 떠올랐던 메르켈 차기 총리. 장애물을 제거하고 앞으로 나가는 데 익숙한 그가 족쇄를 벗고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또는 족쇄조차도 ‘비상(飛翔)의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력을 발휘할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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