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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성서 밖의 예수

입력 | 2005-09-06 03:03:00


내가 ‘성서 밖의 예수’(원제 ‘The Gnostic Gospels’)를 읽은 것은 10년도 훨씬 전이다. 학위 논문을 끝낸 후,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들을 읽다가 이 책을 만났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글쓰기, 그리고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은 내용 때문에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 전통을 보는 관점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

1945년 12월, 나일 강 상류지역의 나그함마디(Nag Hammadi) 마을 근처의 산에서 어느 이집트 농부가 흙을 파던 중 높이가 1m나 되는 붉은색 토기를 발견했다. 항아리 속에 있던 것은 13권짜리 오래된 파피루스였다.

이 발견물의 정체가 밝혀지자, 학계는 엄청난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것은 4세기경의 콥트어(2∼3세기에 성립된 이집트 토착 기독교인의 언어)로 기록된 52종의 텍스트로서, 정통 기독교에서 ‘끔찍한 이단’이라고 정죄한 영지주의(靈知主義·Gnosticism)의 관점에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콥트어 판본은 1∼2세기에 그리스어로 기록된 원본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영지주의는 정통파의 ‘저주’ 안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으나, 이제 이 발견으로 영지주의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이블’에 수록된 정통 복음서와 이른바 ‘영지주의 복음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다른 기독교 이해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영지주의자들이 예수의 부활, 창조주의 성격, 하느님의 남성성, 기독교인의 순교, 교회의 위계적 권위에 대해 정통파와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 차이점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영지주의적 기독교인은 모든 인간에게 신성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보고, 이를 깨닫기 위한 ‘영적 지혜(gnosis)’를 추구하는 반면, 정통파 기독교인은 인간의 원죄를 강조하며, 예수를 통한 구원만이 유일한 구원방법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기독교사 연구에 혁명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이 텍스트는 1970년대에 ‘나그함마디 문고’로 일반에 공개되어 모두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페이젤스의 이 책은 나그함마디 문고의 전체적인 성격과 그 의미를 일목요연하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초기 기독교는 한 가지가 아니었으며 저마다 다른 다양한 신앙노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될 때까지 이 다양성은 유지되었으나, 점차 세력 다툼에서 밀려난 쪽이 이단(異端)으로 정죄되면서 이른바 정통 기독교로 단일화되어 오늘의 기독교 모습이 마련된 것이다.

이 책은 1979년에 출간된 후 전미도서비평가상과 미국도서상을 수상했고 20세기의 100대 도서로 선정됐다. 이 책의 매력은 정통 기독교의 ‘분신(alter-ego)’이라고 할 수 있는 영지주의 기독교의 모습을 단숨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는 영지주의와의 대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세워 나가기 시작했으므로, 이 측면을 살피는 것은 오늘의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장석만 종교문화硏 연구위원 종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