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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5시간 읽고 5시간 쓴다”…書庫속의 수도승 장석주씨

입력 | 2005-06-02 03:28:00

자택 서가에 선 장석주 씨. 그는 “5년 전 이사오면서 후배들 다섯 명과 함께 한 달 동안 책을 정리했는데, 이젠 하도 어질러져 복구가 힘들다. 하지만 필요한 책은 다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성=신원건 기자


경기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 논두렁 밭두렁이 금광저수지 옆으로 이리저리 내달리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2000년 이곳으로 옮겨와 살고 있는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장석주(50) 씨의 집필실인 수졸재(守拙齋)로 들어가 보면 별세계인 것 같다. 홀로 사는 그는 2만 권이 넘는 책을 이곳에 쌓아두고 매일 같이 오전 3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서고(書庫) 속의 수도승”이라면서 “죽어서 화장하면 사리가 나올 것”이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한다.

올해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의 의미와 감동들을 모아놓은 ‘책은 밥이다’ 등 3권의 책을 이미 펴냈으며, 연말까지 시집 ‘붉디붉은 호랑이’를 비롯해 ‘인물로 보는 한국 문학사’, 세계의 금서에 관한 책, 위인들의 유언에 관한 책 등 4권의 책을 더 펴낼 예정이다. 1993년 이후 본격 집필에 나선 그는 지금까지 4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책과 글 속에만 파묻혀 사는 그에게 며칠 전 상념에 잠기게 하는 짧은 소식이 전해졌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가 야한 소설인 ‘광마잡담’을 펴냈다는 것.

“제가 세운 ‘청하’ 출판사에서 1992년 마 교수의 ‘즐거운 사라’를 펴냈지요. 외설 혐의로 그와 같은 날 구속됐다가 두 달 후 함께 풀려나던 기억이 생생해요.”

‘즐거운 사라’ 파문은 장 씨의 삶에 큰 획을 그었다. 1979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주목받은 시인인 장 씨는 그 후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평가받는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평론가로서, ‘청하’라는 꽤 괜찮은 출판사의 사장으로서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즐거운 사라’ 파문 뒤로 출판인 생활을 접었다.

‘청하’는 니체 전집을 비롯한 양서들은 물론 180만 부가 팔린 시집 ‘홀로서기’ 같은 베스트셀러를 펴냈던 잘나갔던 출판사. 하지만 그는 “파문을 겪으면서 이젠 책 만들기보다 책 쓰기에 몰두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고 했다. 돈이 없어 집에 전기가 끊긴 시절도 있었지만 글만 쓰면서 살겠다는 다짐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하루 꼬박 5시간 읽고 5시간 쓰는데 A4지 한 장 정도 쓴다. 참 느린 편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 한다. 올해 책이 많이 나오는 건 몇 해 묵은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올해 첫 책으로 2월에 펴낸 ‘느림과 비움’은 10년째 머리맡에 두고 열 번도 더 읽은 노자의 ‘도덕경’을 다룬 책이다. 그는 “‘도덕경’은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 읽으면 마음을 가라앉히는 내 ‘경전’”이라고 말했다.

“더 깊이 공부하려고 노자와 맥이 닿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책들도 공부했습니다. 들뢰즈의 1000쪽짜리 ‘천 개의 고원’을 읽으니 막막해지더군요. ‘아, 나도 책이라면 좀 읽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어렵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섯 번 읽으니 좀 알 것 같았습니다. 농축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나중에는 제 사유를 개화(開花)시키는 햇빛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의 독서법은 폭 넓게 읽되 좋아하는 것은 파고드는 식이다. 노자와 관련된 책만 100권 넘게 모았다.

그는 “내가 사 모으는 책, 지은이나 출판사들이 보내주는 책이 한 해에 1000권가량 된다”며 “한 일흔 살쯤 돼서 4만이나 5만 권 정도 모이면 지금 이 자리에 작은 도서관을 세워 누구나 읽게 하고 싶다”고 잔잔히 웃었다.

안성=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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