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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태기]근로시간 줄이면 일자리 는다?

입력 | 2005-03-25 18:15:00


보도에 따르면 1998년 주 35시간으로 축소됐던 프랑스의 법정 근로시간이 7년 만에 사실상 주 48시간으로 되돌아왔다. 프랑스의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나라가 2003년도에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할 때 이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핵심적인 근거로 활용됐다. 당시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는 근로시간을 10% 단축하면 추가비용 없이 7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고용사정은 오히려 악화됐고 이 바람에 결국 근로시간을 다시 늘리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정책의 실패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와 노동계는 단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때 노동계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기업이 근로자의 채용을 확대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자연히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주 5일제가 되면 근로자들이 여가를 즐기기 때문에 내수가 촉진된다는 주장까지 폈다.

▼실패로 끝난 佛‘35시간제’▼

우리나라는 근로시간 단축 이후 지금까지 고용사정이 악화됐을 뿐 아니라 내수경기가 침체됐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근로시간을 먼저 단축하게 된 대기업이 인건비 증가 때문에 신규채용을 꺼린 것도 한몫을 했다. 또한 대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중소기업에 하청단가 등으로 전가했다. 때마침 중견기업들이 앞 다퉈 중국 등 해외로 나가는 바람에 근로자들은 저임금과 취업난 때문에 더욱 살기가 어려워졌다. 대기업 근로자 역시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실직의 위험 때문에 지갑을 닫아 버렸다. 결국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 악화와 내수경기 침체, 그리고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활동 동반 위축이란 삼중고(三重苦)를 가중시킨 셈이다.

경제 원리는 쌀쌀맞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은 용납하지 않는다. 근로시간이 법보다는 소득 수준에 의해 좌우되며, 소비 역시 여가시간보다는 소득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법으로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를 만들거나 소비를 늘리고자 한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고용문제가 악화된 원인은 대기업의 노사관계 불안이나 하청구조의 모순 및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 등에 있는데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엉뚱한 처방을 쓴다면 결국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는 물론 대기업과 정규직 근로자까지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인기영합 정책은 각종 현안을 이성적으로 풀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처리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또한 대중 선동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 그 중요성을 부풀리곤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역시 원인 치료보다는 대증요법 차원에서 찾게 되며, 이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국민을 현혹한다. 결국 하나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하고, 이 과정에서 목소리가 큰 소수는 혜택을 보지만 대다수의 조용한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인기영합정책 禍만 불러▼

정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일자리정책을 보면 여전히 외국 정책을 모방하고 인기영합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나 ‘사회적 일자리’ 개발이라는 달콤한 용어를 내세우는 것은 모두 내실이 부족한 정책들이다. 마침 29일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가 재개된다고 한다. 이 자리를 통해 일자리 문제의 본질에 부합하는 정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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